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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취원창 독립운동기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헤이룽장성
문헌상 아성현 취원창
한글 흑룡강성 하얼빈시 당방진 승리대대
현지 黑龙江省 哈尔滨市 糖坊镇 胜利大队
역사적 의의
이상룡을 비롯한 경상북도 안동출신의 의성 김씨와 고성 이씨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던 항일 독립운동 기지
설명
취원창은 이상룡을 비롯하여 김형식(金衡植)ㆍ이광민(李光民) 등 경상북도 안동출신의 의성 김씨와 고성 이씨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항일 독립운동 기지이다. 1934년 당시 300호가 넘는 큰 마을로 한인 100여 호가 모여 살고 있었다. 마을 동쪽에는 蜚克圖江이 흐르고 있어서 수전개발에 유리하여 광복 직전까지도 우리 동포 200호가 살았다고 한다. 석주 이상룡은 1911년 서간도 지역으로 망명하여 경학사ㆍ부민단의 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한족회 회장과 서로군정서의 독판을 역임하였다. 1922년에는 남만주 독립군의 통합단체인 대한통의부를 지도하였으며, 1925년에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1932년 지린 성 서란 현에서 사망하였는데, 1937년에 취원창으로 이장하였다. 동생 이봉희와 조카 이광민, 당숙인 이승화가 같은 묘역에 묻혀 있다.
고성 이씨 묘지는 취원창에서 서쪽으로 2km 정도 되는 곳인데, 중국인 지주의 땅을 사들여 조성하였다. 이봉의의 묘지 옆에 석주의 묘지를 정하여 형제를 한곳에 모셨다. 두 형제가 나란히 누워 있는 묘지는 양지바른 언덕의 풍수가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1990년 9월 13일 국가보훈처의 노력으로 이상룡의 유해는 국내에 봉환되어 국립묘지 임정 요인 묘역에 안치되었다.
지금은 조선족들이 살고 있지 않으며, 다만 한인들의 공동묘지였다고 알려진 지역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동묘지에는 묘비가 없는 무덤이 많고 묘지 구역 전체가 옥수수밭으로 둘러싸여 이상룡이 묻혔던 곳을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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