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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지 최봉설 거주지 터 (와룡촌)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연길현 와룡동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옌지시 소영진 와룡촌 일대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延吉市 小营镇 卧龙村 일대
역사적 의의
간도 15만원 사건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최봉설의 집
설명
최봉설(崔鳳卨)은 옌지(延吉) 와룡동(臥龍洞) 출신이다. 1860년 증조부가 연길로 이주하였으며 1869년 와룡동에 들어왔다고 한다. 1897년 농민이었던 최문호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와룡동에 세워진 창동학교(昌東學校)를 다녔다. 졸업 후 나자구 군관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철혈광복단(鐵血光復團)에 가입하였다.
1919년 3·13 룽징(龍井)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참여하였다. 이후 윤준희·임국정·한상호(韓相浩)·김준(金俊)·박웅세(朴雄世)와 함께 독립운동 자금모집을 논의하고 계획을 추진하였다. 회령에서 용정으로 수송되는 길회(吉會) 철도 시설비 30만원을 가로채는 것이었다. 1920년 1월 거사를 실행에 옮겨 현금 15만원을 확보하였고 연길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향하였다. 이는 ‘간도15만원사건’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최봉설 일행은 곧 일경에게 신원이 노출되었다. 윤준희·임국정·한상호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붙잡혔고 최봉설만 탈출에 성공하였다. 이후 러시아지역에서 활동하다가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하였다.

최봉설은 1956년도에 고향인 옌지를 방문하였다. 당시 와룡동에는 최봉설의 맏아들 최동현이 거주하고 있었다. 최동현은 1949년 최봉설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부자가 서신을 주고 받다가 1956년 최봉설이 오게 되었으며 석달간 체류했다. 이때 고향인 와룡동과 창동학교 터, ‘간도15만원사건’ 지점을 돌아봤다고 한다. 현재 와룡동 집은 8칸 짜리(4칸 겹집) 초가집이었으나 현재 집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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