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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초모활동지 (남천집중영)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충칭
문헌상 유가만 남천집중영
한글 충칭시 파남구 홍기촌칠조 충칭강남강융전력기구창 부근
현지 重庆市 巴南区 红旗村七组 重庆江南康融电力器具厂 부근
역사적 의의
한국광복군이 한인 포로 중 일부를 대원으로 선발했던 포로수용소 터
설명
충칭(重慶) 파남구(巴南區) 유가만(劉家灣)에는 중국군사위원회가 운영했던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포로수용소의 이름은 ‘남천집중영남천군정부 포로수용소’이었다. 이곳에는 약 300명 정도의 일본군 포로들이 수용되었다. 포로들은 모두 5개 동에 나뉘어 수용되었고, 포로가 늘어남에 따라 근처 지주의 집을 수용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포로수용소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일본군 소속 한국인도 있었다. 이들은 지원병·학도병·징병 등을 통해 일본군으로 예속된 후 포로로 잡혔거나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되기 위해 일본군을 탈출한 청년들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어있던 일본군 포로 중 한인 포로들을 한국광복군으로 선발했다. 임시정부는 1945년 3월 13일 내무부장이 남천집중영의 한적 포로들을 면회하였다. 이후 1945년 5월 16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의 윤경빈(尹慶彬)과 선우진(鮮于鎭)이 「원조한국광복군판법(援助韓國光復軍辦法)」에 따라 한적포로 32명을 인계받아 토교(土橋)에 수용했다. 수용된 한적포로는 훈련을 거친 뒤 한국광복군 산하 토교대(土橋隊)에 편성되었다.

남천집중영 포로수용소가 소재한 유가만 일대는 과거 포로수용소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황토가옥 담장일부가 남아있다. 현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일본인들이 이곳에 방문했다고 한다. 이곳은 2009년 충칭시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이에 따라 이곳은 재개발이 불가한 상태이다. 마을 전체를 사적지로 비정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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