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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문학비

사적지 종류 기념비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한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악싸꼬브스카야 12A번지 박물관 밖 공원
현지 Россия, Владивосток, Аксаковская улица, 12А, Учебно -научный музей(극동연방대학 교육-과학박물관) 뒤쪽 공원
역사적 의의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민족문학 작가 조명희를 기념하여 세운 문학비
설명
조명희(趙明熙, 1894-1938)는 충북 진천 출신이다. 진천 사립 문명학교(현재 鎭川常山初等學校 )를 졸업하고 중앙고보에 다니다가 1914년 중퇴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여 투옥되었다.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조명희는 유학기간 동안 시·극본·소설 등 많은 작품을 집필하였다. 이 가운데 「김영일
金英一의 사死」는 많은 호평을 받았다. 가난한 유학생의 현실이 반영된 자전적인 성격을 띤 작품으로 한국 근대 문학 최초의 창작 희곡이었다. 1924년경 유학을 중간에 그만두고 귀국하였다. 1925년 8월 국내에서 카프 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결성되자 창립 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개벽』에 「땅속으로」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서 새로운 문인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일제의 농촌 수탈과 이에 저항하는 지식인의 삶을 그린 소설 「낙동강」을 발표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대표 작가로 인식되었다.
1928년 러시아 망명을 결심하였다. 카프 내에서 사회주의적 활동으로 일제의 감시와
압박이 강화되었던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조명희는
‘조생’이란 필명으로 산문시 「짓밟힌 고려」를 발표하였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일제에
강한 저항의지를 거침없이 드러내었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 각지에서 활동하였다. 추풍秋豊의 푸칠로프카 Putsilovka, 六城村에서는
고려어(한글) 교사로 있으면서 동화극 「봄나라」, 동요 「눈싸움」, 「샘물」과 같은 작품들을 썼다. 1934년에는 작가 파제예프(Fadeyev) 추천으로 소련작가동맹 맹원으로 가입했으며, 한인신문 『선봉』과 잡지 『노력자의 조국』의 편집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에 많은 제자들을 문학가로 길러 냈다. 이러한 조명희의 활동을 기리고자 2006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기술대학에 문학비가 세워졌다. ‘잃어버린 민족문학사를 찾아가는 작가모임’이 주최하고 한국문학예술위원회와 실천문학사의 후원이 있었다. 8일 러시아 극동대학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관에서 주관하여 제막식이 치러졌다.

조명희 문학비가 세워진 곳은 극동대학교 공과대학이었으나 현재 연방대학으로 흡수되어 이전하였다, 공과대학 자리와 옆의 박물관 건물은 러시아 중앙정부에 매입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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