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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희 수감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하바로브스크
문헌상
한글
현지 Россия, Хабаровск, Волочаевская улица, 146(구 하바로프스크 KGB 본부)
역사적 의의
스탈린 대탄압 당시 조명희가 피체되어 심문을 받고 총살된 곳
설명
조명희는 국내에서 3 ·1운동에 참가했고, 일본 유학 후 문학가로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에서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인 카프(KAPF)의 결성시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일제의 감시가 강화되자 1928년 7월 소련으로 망명하였으며, 러시아 연해주지역에서 문학가이자 교육가로 활동하였다. 그는 작품 활동을 지속하여 한인청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1934년에는 소련의 유명 작가 파데예프의 추천으로 소련작가동맹의 회원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파데예프와 같은 건물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1937년 9월 스탈린 대탄압 당시 내무인민위원회 기관원에 연행되었다. 가족들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하였다. 집필 중이었던 『만주 빨치산』은 출간하지 못하였다. 1938년 4월 재판 없이 일제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총살되었다. 유족들이 찾아낸 기록에 따르면, KGB 하바로프스크 본부 지하에 있는 감옥에서 총살형을 당했다고 한다.
조명희의 간첩혐의는 1956년 7월 소련 극동군관구 군법회의에서 파기됨으로써 벗겨질 수 있었다. 이로써 조명희 사후, 유족과 지인들의 조명희 신원 회복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건물은 1899년에 착공하여 1913년에 완공되었다. 조명희 피체당시 KGB 건물로 사용되었다. 현재 법무부 건물로 은퇴한 공무원들의 은퇴자금 및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바로 옆에 KGB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어 사진촬영에 제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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