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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이유필 거주지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상하이
문헌상 霞飛路 寶康里 54號
한글 상해시 황포구 회해중로 333호 일대
현지 上海市 黄浦区 淮海中路 333号 일대
역사적 의의
교민단장 겸 인성학교 교장을 역임한 이유필이 1920년대 중반 거주하였던 곳
설명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으로 활동한 이유필의 거주지이다. 또한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 훙커우공원(虹口公園)의거로 안창호가 일제경찰에 의해 피체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유필은 평북 의주 사람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신민회에 참여했다. 이후 이른바 ‘데라우치(寺內) 총독암살음모사건(일명 105人事件)’에 관련되어 전남 진도에 1년간 유배당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일청·조봉길 등 한인관리들과 동맹퇴직을 결의하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교민단, 의사원,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사원, 내무부 비서국장 등의 책임을 맡았다.
1920년에는 안창호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선전위원회를 설치했다. 1921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고, 다음해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출되어 1926년 2월까지 의정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내무총장과 재무차장·국무원, 그리고 1933년까지 임시정부의 주요 인사로 활동했다.
이밖에 1921년 독립운동과 한중(韓中)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해 결성된 한중호조사(韓中互助社) 설립에 참여했다. 1922년에는 김구·여운형·최석순 등과 독립운동 단체 한국노병회(韓國勞兵會)를 조직하여 이사 겸 경리부장에 임명됐다. 이후 상하이 교민단장에 선출되어 민단에서 경영하는 인성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교사(敎舍), 교칙(校則) 등을 쇄신·보완하고, 1927년까지 동교 교장으로 후진양성을 위한 육영에 전념했다.
1930년 3월에 상하이·난징(南京)·베이징(北京)·광저우(廣州) 등지의 독립운동가들과 한국독립당을 조직하고 총무이사에 선출됐다. 한국독립당의 기관지인 『上海新聞』 사장에 취임하여 차리석·이수봉·박창세 등과 함께 선전활동에 나섰다. 1933년 3월 9일 상하이 핀반루(品班路)에서 일본헌병에 피체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45년 11월 29일 청단(靑丹)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이유필은 1920년대 중반 상하이 교민단을 이끌면서 1932년 윤봉길의거가 일어날 때까지 이곳에서 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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