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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아나키스트 자금 모집 활동지 터 (모아호동)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베이징 동성구 모아호동 일대
현지 北京市 东城区 帽儿胡同 일대
역사적 의의
1923년 정화암·이을규·이정규·백정기 등의 아나키스트들이 자금 모집하였던 장소
설명
정화암(鄭華岩)은 1921년 늦겨울 국내에 잠입하였다. 국내에서 자금 마련에 실패하였으나, 베이징으로 국내 재력가인 고명복 모녀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고명복 이모는 모녀가 베이징에 도착하자 그 소식을 들었다. 고명복의 이모는 이근홍(李根洪) 첩이었다. 그리고 이근홍은 밀정노릇을 하여 상당한 돈을 가지고 있었다. 이근홍이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의 부친인 윤택영(尹澤榮)과 친분이 있었기에 그를 통해 모아호동(帽儿胡同)에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모아호동은 귀족들이 사는 아문구(衙門區)로 아무나 출입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정화암이 고명복 모녀를 베이징으로 데려온 것은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1923년 가을 정화암·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백정기(白貞基) 등의 아나키스트들은 이회영(李會榮)의 집에 자주 모여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정하 하천부지를 개간하여 그 수익금으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과 생활비를 조달하고자 하였다. 이회영은 이전부터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으나 사업에 투자할 자금이 없었기에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화암은 고명복 모녀에게 영정하 개간계획에 출자하도록 설득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고명복 모녀는 이를 눈치채고 정화암을 멀리하였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자 김창숙(金昌淑)은 그들의 재산이 민족을 팔아 부당하게 갈취한 돈이라며 이를 탈취해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자고 주장했다. 논의 끝에 정화암·김창숙·이을규 형제 등은 고급주택가에 사는 고명복 모녀의 집에서 자금이 될 만한 것들을 가져오기로 하였다. 이 계획에는 정화암의 동거녀 이자경(李慈卿)의 도움이 있었다. 그녀가 제공한 정보를 이용하여 몰래 잠입해 패물들을 빼내었다. 이것이 모아호동(帽兒胡同) 사건이다. 정화암의 회고에 따르면 모아호동 사건은 다음날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베이징 공안국에 쫓기게 되었다. 정화암은 북경대학에 다니던 소완규(蘇完奎)의 배려로 대학 기숙사에 숨어 있었으나, 이회영과 의논하여 난진창(만청인 집거지)으로 옮겼다. 이규창은 베이징일대의 큰 파문을 일으킨 ‘강탈사건’이 발생하여 조선인이 거주하는 장소에는 중국경찰의 감시가 삼엄하였으며, 이회영 집에서도 전가족이 경계하며 경과를 주시하며 지냈다고 하였다. 모아호동 사건으로 동지들은 베이징과 톈진 부근에 흩어졌다. 사건이 잠잠해지자 고명복 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을 전매하였다. 이후 이회영·이을규·이정규·백정기·류자명 등의 아나키스트들은 1924년 4월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결성하였으며 순보 정의공보를 발행하여 아나키즘을 선전하였다.

현재 상태로는 정확한 지번을 특정할 수 없어 모아호동 거리 전체를 신규사적지로 비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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