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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이규채 거주지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베이징시 서성구 민강호동 15호 일대
현지 北京市 西城区 民康胡同 15号 일대
역사적 의의
이규채가 1933년 만주지역에서 활동한 한국독립군의 관내 이동 당시 자금 마련 및 연락을 위해 거주한 곳
설명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가 및 단체들은 1932년 소위 ‘만주국’이 세워진 이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강화되자 관내로 근거를 옮기고 있었다. 재만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 역시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에 관내로 근거를 옮겨 중국국민당의 지원을 얻고, 관내지역 독립운동세력과 연합하고자 하였다. 1933년 5월경 한국독립군 참모 이규채(李圭彩)는 관내이동을 지원받기 위해 국민당정부가 소재한 난징(南京)으로 향하였다. 여기서 국민당정부와 김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던 박찬익(朴賛翊)을 만났다. 이규채는 박찬익에게 한국독립군 이동에 필요한 자금 600원을 제공 받아 지린(吉林)으로 갔다. 비용은 국민당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김구가 부담하였다. 김구는 만주지역 독립군을 뤄양(洛陽)의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에 입교시켜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가져온 자금은 재만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이 함께 관내로 이동하는데 부족하였다. 이에 다시 오광선과 함께 장춘·봉천·영구·천진을 거쳐 북경에 체류하였다. 이때 머무른 곳이 서성구 순포청호동 15호의 중국인 집이었다. 이곳에서 박찬익 앞으로 한국독립군이 관내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여비를 지원해 달라는 내용의 소개장을 써 오광선에게 주어 난징으로 보냈다. 오광선은 박찬익으로부터 1,200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고 이를 가지고 지린으로 돌아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33년 11월 이청천·홍진·김창환 등 40여 명의 인원은 베이징에 안착할 수 있었다. 이청천·오광선 등 한국독립군 간부들은 뤄양으로 이동하여 중앙육군군관학교 뤄양분교 한인특별반의 교관이 되었고, 한국독립군 대원들은 입교생이 되었다. 이들이 떠난 후에도 이규채는 생활안정과 자금조달을 위해 남진호와 함께 베이징에 남았다.

근거자료 부족으로 명확한 위치를 비정할 수 없다. 도로명이 민강호동(民康胡同)으로 바뀌었으며 민간인 거주 밀집지역으로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기 어렵다. 거리 일대를 위치 비정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사적지 주변이 상권으로 변모된 것으로 미루어 근시일 내에 소멸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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