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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무학교 군사훈련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멕시코
대륙 북아메리카 지역 멕시코
문헌상
한글 유카탄 메리다 엘 메르카도 재래시장
현지 El Mercado, Merida, Yucatan
역사적 의의
1909년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독립군 양성을 위해 설립했던 숭무학교의 옛 터
설명
숭무학교는 1909년 11월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독립군 양성학교이다. 1909년 11월 17일 메리다지방회 회관에 전체 회원이 운집한 가운데 숭무학교 창립 행사가 거행되어 도지휘관에 이근영, 조교에 양귀선, 조병하, 이수근을 선임하였다. 이튿날인 18일에는 이근영의 지휘 아래 2개 소대 110여 명의 한인군대는 무예과목을 훈련하고 시내를 행진하며 기상을 드높였다.
당시 멕시코에서는 대한제국 군인 출신 2백여 명이 있었다. 그 가운데 조병하는 청년 수백명을 모아 매일 노동시간이 끝난 후 체조ㆍ운동ㆍ보법 등 무기(武氣) 훈련을 하였다(《황성신문》 1909년 10월 5일자, 「武氣培養」). 교본은 승무학교 교장이었던 이근영이 대한제국 하사였던 경험을 살려 저술한 『군무요령(軍務要領)』, 『보병요조초선(步兵要操抄選)』 등을 사용하였다(《신한민보》 1909년 12월 8일자, 1910년 7월 20일자). 한편 메리다지방회는 각 농장에 경찰소를 설치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군사훈련을 하였다. 깔게독ㆍ씨실체ㆍ사실ㆍ띄티ㆍ노하깔ㆍ씨옵 등지에 설치된 경찰서는 동포들에게 국법과 체조 등 군사훈련을 하였다. 작둔지방의 경우 이수근이 교장을 맡고 2등교감 양귀선의 지휘 하에 군사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교감 한 명으로는 감당할 수 없자 3등교감 천관옥을 보강하기도 하였다(《신한민보》 1909년 12월 10일자, 「국민회보」). 숭무학교에서는 이와같은 과정을 통해 많은 학생을 키워냈다. 처음 배출된 학생은 118명이었다.
그러나 숭무학교를 한참 확장해 나갈 즈음 1913년에 멕시코 혁명이 일어나 학생들은 가족을 떠나 피난을 가거나 혹은 전쟁에 종군하여 사방에 흩어져 1913년 3월에 폐교되었다(김원용, 『재미한인오십년사』, 345쪽).
이근영은 이 때 병사 3백명을 이끌고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동아일보』 1922년 8월 7일자, 「新朝鮮의 建設運動」). 그러나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신한민보》기사에 따르면 이근영은 황민주의 권유로 이정구와 더불어 메리다로 와서 동포 청년 33명을 모집하여 과테말라 혁명 고용병으로 참전하였다고 한다. 이때 이근영 등은 멕시코시티에서 모집한 청년 40여 명을 이끌고 과테말라 혁명에 참가하였다. 당시 과테말라는 23년간 통치를 하고 있던 가부리엘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혁명의 와중에 있었다. 이근영 등은 혁명전쟁에 참가한 이유는 성공하면 미금(美金)3백만 원을 받아,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신한민보》 1916년 9월 8일자, 「과테말라혁명에 한인 고용병」; 《신한민보》 1916년 9월 14일자, 「멕시코에서」). 하지만 같이 혁명군에 참전하기로 한 황민주와 이정구는 돈을 받고 한인용병들을 혁명군에게 넘겨주고 도망가고 얼마 후 이근영도 종적을 감추었다. 한인용병들은 과테말라 혁명군의 학대를 받았으며, 풍토가 맞지 않아 고생을 하였다(《신한민보》 1916년 11월 1일자, 「혁명군에게 팔린 동포」).
숭무학교의 터는 엘 파보 대한인국민회 메리다지방회관에서 1블럭 떨어진 곳에 있다. 당시에는 노지와 약간의 구릉지대였다. 1945년부터 이곳에 엘 메르카도(El Mercado)라는 재래시장이 들어섰다. 일대는 시장이 번성하여 흔적조차 파악할 수 없다. 현장 접근도 쉽지 않을 정도로 하루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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