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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빈 양세봉 흉상

사적지 종류 동상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랴오닝성
문헌상 신빈 왕청문 조선족학교 교내
한글 요녕성 무순시 신빈현 왕청문 협피구 강남촌
현지 辽宁省 撫順市 新宾县 旺清门 夹皮沟 江南村
역사적 의의
1920~30년대 만주에서 활동했던 조선혁명군 사령관 양세봉을 기리기 위해 만든 흉상
설명
벽해 양세봉은 1896년 7월 평북 철산군에서 태어났으며 3ㆍ1운동 직후 평안도 지역의 천마산대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천마산대에 입대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만주로 망명하여 광복군총영과 합류하였다.
1923년 통의부가 조직되자 소대장으로 임명되어 활발한 국내 진공작전을 펼쳤으며, 다음 해에는 소대를 이끌고 국내진공작전을 펼쳤다. 1926년 11월 참의부 대원들을 이끌고 정의부의 이청천ㆍ오동진을 만나 정의부 제5중대 제1소대장에 임명되었다. 정의부는 초기에 본부를 길림에 두었는데 양세봉은 왕청문에 배치되었다. 1928년 5월 화전현 화성의숙에서 18개 독립운동단체 대표들이 개최한 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의에 정의부 일원으로 참가하였고 양세봉은 협의회파의 의견에 동조하였다. 1929년 4월 군정부는 정식으로 국민부로 개칭하였으며, 국민혁명군 제1중대장에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1929년 9월 흥경현 왕청문에서 제1회 중앙회의를 소집한 국민부는 민족유일당조직동맹을 조선혁명당으로 재조직하기로 하였다. 조선혁명당은 중앙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현정경이 임명되었다. 만주사변(9ㆍ18사변) 이후 양세봉은 조선혁명군 총사령에 임명되었다. 양세봉은 중국인들과의 연합작전을 통해 보다 효과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요녕농민자위단과의 합작을 통해 만군과 대항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취오와도 연합하여 조선혁명군의 세력을 확장하였다. 통화전투를 비롯한, 흥경전투와 영릉가 전투를 거치면서 남만일대에서 한중 연합작전의 실상이 일반인들에게도 전해졌다.
1995년 8월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신빈현의 조선족 기업가협회를 비롯한 많은 조선족 유관단체들이 모금하여 양세봉 흉상을 정의부 본부였던 왕청문 소학교정 내에 건립하였다. 2008년 학교가 한족에게 팔리면서 양세봉 흉상은 2009년에 강남촌 협피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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