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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대학 터

사적지 종류 건물,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북경대학 1원: 베이징시 동성구 오사대가 29호 / 제2원: 베이징시ㅣ 동성구 사탄후가 55-1
현지 북경대학 제1원: 北京市 东城区 五四大街 29号 北京新文化运动纪念馆 / 북경대학 제2원: 北京市 东城区 沙滩后街 55-1 原和嘉公主府大殿 일대
역사적 의의
이육사(李陸史; 李元祿) 등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대학교육을 받았고, 활동했던 북경대학 옛
건물
설명
북경대학(北京大學)은 1898년 12월 경사대학당(京師大學堂)으로 출발하였다. 1912년 채원배(蔡元培)가 교육총장에 임명된 이후 명칭을 북경대학으로 바꾸고 교육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로 진보적 지식인층인 진독수(陳獨秀)·이대교(李大釗)·노신(魯迅)·호적(胡適) 등이 교수로 초빙되었다. 이들이 대학에 참여하면서 북경대학은 신문화운동의 중심이 되었으며 1919년 5·4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한인들에게 북경대학은 일제의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다. 1919년 3·1운동과 중국의 5·4운동을 계기로 꾸준히 증가하여 1930년대까지 포함하여 수백 명에 이르렀다. 동경(東京)유학보다 학비가 저렴하였으나 국내에서 학비를 조달할 수 있는 학생보다 스스로 벌어 고생하며 공부하는 고학생이 많았다. 유학생들은 하나의 방에 여러 명이 생활하거나, 중국인이 운영하는 공우(公寓, 하숙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장기간 숙박비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생활비 마련에 있어서도 북경은 인건비가 낮은 중국 노동자가 많고, 유학생들은 중국어가 서툴러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유학생들은 학교 내에서 독립운동에 관심을 두었다. 독립선언기념일·국치일·개천절 등의 기념일마다 집회와 강연회를 개최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1925년 3월 1일 북경고려유학생회와 북경한교동지회는 함께 북경대학 제2원 13호 교실에서 독립선언기념식을 열었다. 신문과 잡지를 발행하여 신학문과 시국에 관한 글들을 실었다. 발간물은 대부분 자필로 쓴 후 북경대 석판부에 위탁하여 인쇄되었다. 1923년 4월 북경조선인유학생회가 발행한 『넋』·『새조선』, 1924년 2월1일 양명(梁明) 등이 조직한 신광사新光社에서 발행한 잡지 『신광(新光)』, 1925년 3월 1일 북경한교동지회의 『앞잡이』, 북경고려유학생회의 『해외순보』 등의 발행주소는 북경대학 제1원이었다.
북경대 유학생 가운데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는 이대위(李大偉)·장자일(張子一)·이윤재(李允宰)·이육사(李陸史) 등이다. 이대위는 선천(宣川)의 신성중학(信聖中學) 졸업 후 북경 재정대학(財政學校)에서 2년 정도 수학한 후, 1916년부터 북경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다. 장자일도 신성중학을 졸업 후 1917년 무렵 북경대 문과에 입학하였다. 두 사람은 북경조선유학생회의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윤재는 1918년 가을 북경대 사학과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졸업 후 귀국하여 교편을 잡았으며, 조선어편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진단학회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육사는 1930년 북경대학에 입학하여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중외일보』, 『조광』 등에 시문을 발표하였으며, 이후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유학생 이외에도 류자명(柳子明)·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정화암(鄭華岩) 등의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북경대학의 채원배·오치휘吳稚暉·이석증李石曾과 개인적인 친분을 맺고 있었다. 특히 북경대 교수인 러시아 시인 에로셍코(Eroshenko)의 사상과 강의는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1952년 연경대학과 합병하여 해전구로 이전하기 전까지 북경대학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북경신문화운동기념관, 북경문물출판사로 사용되고 있다. 북경대학 제1원과 신규 발굴된 제2원을 연계하여 위치를 비정하였다. 북경대학 제2원 외부 호동(胡同)을 ‘대학당내도(大學堂來道)’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이는 지리적으로 김산이 거주했던 삼안정호동(三眼井胡同)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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