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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김산 거주지 (납복호동/삼안정호동)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납복호동: 베이징시 동성구 납복호동 4호 일대 / 삼안정호동: 베이징시 동성구 경산동가 삼안정호동 26호 일대
현지 납복호동 北京市 东城区 纳福胡同 4号 일대 / 삼안정호동 北京市 东城区 景山东街 三眼井胡同 26号 일대
역사적 의의
1930년 11월과 1934년 경 북경에서 김산이 거주했던 곳
설명
김산(金山, 본명 張志樂)은 사회주의자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1년 베이징의 협화의학원(協和醫學院)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중,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였다. 김성숙(金星淑) 등과 함께 공산청년동맹(共産靑年同盟)에 가입하고 잡지 『혁명(革命)』을 간행하였으며 고려공산당 베이징지부 설립에 참가했다.
김산은 중국 광저우(光州)로 활동지를 옮겨 활동하다가 1925년 7월 중국공산당에 들어갔다. 1926년부터 조선혁명청년동맹에서 중앙위원을 맡았으며 기관지 『혁명행동(革命行動)』의 부주필로 활동하였다. 1929년 중국공산당의 지시로 다시 베이징으로 이동하여 북경시위원회 조직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대독립당조직북경촉성회(大獨立黨組織北京促成會)에 가입하여 민족유일당운동에도 참가하였으며, 만주지역에서 조선공산당 세부조직을 중국공산당에 가입시키는 임무를 맡기도 하였다. 납복호동은 김산이 만주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거주한 곳 중의 하나이다. 그는 국민당과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여관이나 셋방으로 거주지를 옮겨다녔다. 1930년 11월 경에는 납복호동 4호 천흥공반점(天興公飯店) 뒤의 셋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중국 공안에게 붙잡혔다. 11월 20일 베이징 서성(西城)의 공과대학과 붙어있는공우(公寓, 아파트)에서 열리는 공산주의 비밀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에 붙잡힌 것이었다. 김산의 사진 가운데 잘 알려진 톈진(天津) 주재 일본영사관에서 찍은 사진은 이 일로 국내에 송환되는 과정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납복호동 부근인 삼안정호동에도 김산의 거주지가 있다. 1930년 11월 피체 후 국내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고 석방된 후에 베이징에서 거주하던 곳이다. 그는 1931년 4월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이후 다시 6월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국내까지 송환된 상황에서 너무 빨리 돌아왔기에 변절자로 의심을 받아 공산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결백을 주장하고 복당을 요구하였다. 억울한 심정을 참으며 번역 및 잡지글 기고에 매진하였는데 이때 거주한 곳이 경산동가 삼안정호동 26번지 셋방이었다. 또한 이곳은 아내인 조아평(趙亞平)과 살림을 꾸린 곳이다.

삼안정호동은 경산공원 맞은 편이자 북경대학 뒤쪽에 위치하여 교수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도시개발로 인해 김산 거주지인 삼안정호동 26호는 정확하게 알 수 없어 현재 26호와 89호를 추정하고 있다. 김산의 또 다른 거주지인 납복호동은 원형이 남아있다. 바로 옆에는 숭축사라는 사찰이 남아있으며 현재 실크로드 국제총상회 베이징대표처 건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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