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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 토교대 거주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충칭
문헌상 중경시 파현 토교장정가 146호
한글 중경시 파현 토교장정가 146호
현지 重庆市 巴南区 土桥场正街 146号
역사적 의의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일종의 보충대 양성을 위해 한인청년들을 군사 훈련을 시켰던 토교대 대원들이 거주했던 곳
설명
토교대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관련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토교대는 상설 조직체가 아니었고, 한인청년들이 집결되는 상황에 따라 임시로 편성되었다. 토교대는 모두 세 차례에 걸쳐 편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로 편성된 토교대는 1944년 3~4월경 33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주로 일본군에서 탈출한 한인청년들이나 일본군 관계자, 중국 현지에서 토목이나 철공업 등 생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제1차 토교대는 3개반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3개월간 주로 군사 및 정훈 교육을 받고 주로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되었다.
두 번째 토교대는 1945년 1월 말 한광반 출신 등 51명이 중경에 집결한 것을 계기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중경 도착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머물고 있다가 1945년 2월 토교로 옮겨 한교기독청년회관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들 제2차 토교대는 이미 한국광복군청년훈련반 교육을 통해 교육과 훈련을 받고 소위로 임관하였기 때문에 토교대에서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고 한국광복군의 각 부서로 배치가 결정될 때까지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이들 제2차 토교대는 임정 내무부 산하의 경위대와 제2지대 등으로 배치되었고 4월 말까지 대부분의 대원들이 배치가 완료되면서 해체되었다.
세 번째 토교대는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어 중국 전선에 배치되었다가 중국군에게 포로로 잡힌 한적사병들이 1945년 5월부터〈원조한국광복군판법〉의 발효에 따라 석방되면서 이들 중 32명을 토교에 집단 수용하면서 편성하였다.
1943년 중경경찰국에서 작성한 「重慶警察局韓僑調査表」에 따르면 1943년 현재 토교정가 146호에는 1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들 명단을 보면 이상만(한국 독립당, 61세), 박용덕(제2지대, 28세), 금상준(제2지대, 25세), 황영식(제2지대, 27세), 안봉순(제2지대, 49세), 최상철(제2지대, 26세), 민병길(한국독립당, 60세) 등이다.
당시 토교대가 거주했던 곳은 현재 토교정가 146호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시 사용하던 도로명과 번지수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층 건물로 원형은 많이 훼손되었으나 내부는 원형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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