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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교 중국기독교청년회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상하이
문헌상 八仙橋 大世界 중국기독교청년회관
한글 상해시 황포구 서장남로 123호
현지 上海市 黄浦区 西藏南路 123号
역사적 의의
1932년 4월 28일 김구와 윤봉길이 훙커우의거를 논의했던 장소
설명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의 의열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의 활로를 개척했다. 윤봉길의 훙커우공원의거를 통해 독립운동의 대전환을 가져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1908년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난 윤봉길은 야학을 개설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했으며, 1929년에는 월진회를 조직하여 농민의 생활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이후 1930년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망명길에 올랐고, 1931년 중국 상하이(上海)에 도착한 뒤 그해 7월 김구를 찾아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하는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윤봉길의 간절한 소망은 곧 현실로 이루어졌다. 상하이를 점령한 일본군은 4월 29일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의식을 거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소식을 들은 김구와 윤봉길은 특무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거사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했다.
1932년 4월 26일 윤봉길은 상하이 대한교민단 사무실에서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의거 수행을 선서했다. 다음날인 27일 윤봉길은 훙커우공원의거에 앞서 주변지역을 사전 답사했다. 사열대를 만드는 것을 보고 거사에 적당한 위치를 정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베레루(貝勒路) 동팡공우(東方公寓) 30호로 숙소를 옮겼다. 같은 날 저녁 김구를 만나 사전답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안공근의 집으로 가서 양복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어 김구가 폭탄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29일 아침에 전달될 것이라고 하면서 4월 28일 중국기독교청년회관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 폭탄은 김구의 부탁에 의해 상하이 중국군 병공창의 병기주임 김홍일(당시 王雄으로 활동)이 상하이 병공창에서 비밀리에 준비했다.
4월 28일 정오 윤봉길은 김구와 함께 ‘팔선교(八仙橋) 대세계(大世界)’ 근처인 중국기독교청년회관에서 만나 식사를 하면서 거사를 재차 논의했다. 오후에는 일본인 상점에 들러 시라카와·우에다(植田謙吉) 등의 사진과 행사장에 가지고 갈 일장기를 구입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녁에 김구가 다시 찾아와 이력서와 유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하자 김구를 위한 시와, 조국 청년들에게 남기는 시, 두 아들에게 남기는 시 각 1편을 작성하여 김구에게 전했다.
4월 29일 거사의 아침이 밝았다. 윤봉길은 김구와 함께 김해산의 집에서 아침을 먹은 후 도시락과 수통형의 폭탄을 건네받았다. 훙커우공원에서 열리는 행사에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아 참석자에게 도시락을 지참시켰기 때문이었다. 김구와 이별한 뒤 윤봉길은 택시를 타고 훙커우공원으로 향했고, 7시 50분경 도착하여 정문을 통과하여 입장했다.
훙커우공원에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일본군을 포함하여 각국의 사절 및 초청자를 포함하여 2만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윤봉길은 11시 40~50분경 일본 국가 기미가요의 마지막 소절을 부를 때, 단상으로 접근해 5m거리에서 준비해간 수통형 폭탄을 식단을 향해 투척했다. 폭탄은 정확하게 단상 가운데 떨어져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단상에 도열해 있던 시라카와 대장 등 7명은 중상을 입었다. 특히 ‘상해사변’을 승리로 이끌었고, 일본 육군의 상징과도 같은 시라카와가 처단됐다. 의거 현장에서 윤봉길은 피체되어 일본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11월 18일 오사카(大阪) 위수형무소로 옮겨졌고, 12월 18일 가나자와(金澤) 육군형무소로 이감되어 12월 19일 아침 순국했다.
현재 중화기독교청년회관은 원형이 보존되어 있으며,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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