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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산 조선의용대 4열사 묘역 (황북평촌)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베이성
문헌상
한글 하북성 찬황현 황북평촌
현지 河北省 贊皇县 黃北坪村
역사적 의의
후자좡(胡家庄) 전투에서 순국한 4열사의 묘역
설명
후자좡(胡家庄) 전투에서 희생당한 손일봉ㆍ최철호ㆍ왕현순ㆍ박철동 4열사를 먼저 후자좡에 매장하였다가 다시 찬황현 황북평으로 이장하였다. 1941년 12월 15일 조선의용대원 및 찬황현 각계 인사 수백 명이 황북평에 모여 후자좡 전투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을 위한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1941년에 조성된 본래의 4열사의 묘는 현재 위치에서 약 500m 아래쪽에 있었다. 이곳은 2017년 신규 조사되었으며, 당시 만들어진 비석이 여전히 남아있어 이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4열사 묘는 2002년에 새롭게 조성하였으며 한국 순국선열유족회와 중국 정부는 협의를 통해 마을 입구에 순국선열기념비를 세웠다. 이후 2015년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새로 단장하였다. 이때 묘역 단장하면서 마을 입구의 순국선열비도 4열사 묘 앞쪽으로 옮겨져 함께 정비되고 있다. 묘역 앞에 있던 다른 순국선열기념비는 좌측으로 옮겨졌다.
박철동(1915~1941)은 충북에서 태어났으며, 충주 학생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자 1931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1933년 야학에서 남경 조선혁명당으로부터 파견된 동지 한 사람을 알게 되어 그의 소개로 10월 초에 남경으로 출발하였다. 도중에 남경에서 일경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탈출한 후 1934년 1월 초에 낙양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1년 반 후에 동교를 졸업한 그는 1935년 7월에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다. 그 해 혁명당의 명령에 따라 화남으로 파견되어 가던 도중 복건 천주 나루터에서 일군에게 붙잡혔다. 그는 곧 일본 규슈로 압송되어 징역 3년을 받고 규슈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8년 가을 출옥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머무르다가 일경의 눈을 피하여 중국의 운성으로 탈출하였다. 운성에 도착한 후 애국청년들을 모아 반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9년 낙양의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였다. 1941년 12월 12일 하북성 원씨현 호가장 부근에 주둔하던 중 일본군 불의의 습격을 받아 이에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정부는 그에게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손일봉(1912~1942)은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1931년 중국 청도로 건너가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의 일원으로 반일활동에 참가하였으며, 상해에서 한국인 밀정을 제거하는 활동을 하였다. 또한 그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투탄의거의 공모자 중 한 사람이었다. 1934년 중앙육군 군관학교 군관훈련반에 입교, 1935년 동교를 졸업하고, 10월에는 중앙육군 군관학교 광동 제4분교에 재입학하여 1938년 졸업하였있다가, 1941년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선임관으로서 화북적후공작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 21일 호가장에 주둔하던 중 일군에게 기습당하여 주력부대를 호위하기 위해 맞서 싸우다가 순국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정부는 그에게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왕현순(1918~1941)의 본명은 이정순이며, 평안북도 벽동에서 태어났다. 1933년 중국에 건너간 그는 남경의 의열단 간부학교인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제2기생으로 졸업하였다. 그 후 의열단의 중앙당 연결 업무를 맡아 활동하였고, 1936년 2월에는 민족혁명당 조직 검사국의 직원으로 활동하였다. 계속하여 광동국립중산대학부중 및 중원중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중앙육군 군관학교 특별 훈련반에서 훈련을 받은 뒤 1938년 5월 졸업하였다. 이어 조선의용대에 입대하여 제2지대에 배치된 뒤 상북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남악(南岳)으로 이동, 유격훈련을 마친 뒤 화북지방으로 진출하여 임무를 수행하였다. 조선의용대 제2지대는 적후의 동포들을 위하여 강력한 혁명무장대오를 건립한다는 목표 아래 적 후방에 침투하여 대적선전과 유격전을 전개하여 수십 차례에 걸친 격전을 치렀다. 특히 1941년 12월 하북 형태(邢台) 부근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치러 백여 명을 사살하고 무수한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이것은 조선의용대가 중국항전에 참가한 이래 최대의 전과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그는 동지 3명과 함께 적탄에 맞아 순국하고 말았다. 1993년 대한민국정부는 그에게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청도(1915~1941)의 원명은 최철호이다. 대전광역시 출신으로 1935년 중국 남경에서 본격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8년 5월 중국 중앙육군 군관학교 특별훈련반을 제6기로 졸업하고 한구에 와서 조선청년전시복무단에서 항일선전 임무에 전력하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여 제5전구와 제1전구에서 대적선전사업에 종사하였다. 1940년 조선민족해방투쟁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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