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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항산 윤세주ㆍ진광화 열사 묘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베이성
문헌상
한글 하북성 섭현 석문촌 태항산 기슭
현지 河北省 涉县 石门村 太行山 山麓
역사적 의의
1942년 5월 반소탕전 당시 태항산에서 전사한 윤세주와 진광화의 묘(1950년 10월 한단시내 진기로예 열사능원으로 이장)
설명
1942년 10월 조성된 묘역으로 줘취엔(左權) 장군을 비롯해 1942년 5월 반소탕전 당시 전사한 열사들의 첫 묘역이다. 줘취엔 장군 묘에서 동북쪽으로 500m쯤 되는 지점에 윤세주 열사와 진광화 열사의 묘가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묘비에는 1942년 5월 화옥산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팔로군 총지휘부 부참모장 좌권장군을 비롯해 윤세주ㆍ진광화 열사가 전사했던 1942년 5월 ‘반소탕전’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일본 북지파견군은 1942년 2월 4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3월 말까지 팔로군 근거지에 대한 소위 ‘제1차 소탕전’을 벌인 데 이어 5월 전차와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본격적인 ‘제2차 소탕전’을 개시하였다. 5월 24일 제36사단, 제26사단 일부와 제3 독립 혼성여단 3만여 명으로 편성된 일본군은 소위 ‘철벽합위’의 전술로 타이항 산 근거지 북부의 동욕 지역 등을 점령하고, 몇 갈래로 나뉘어 팔로군 전선총지휘부를 포위하였다. 이때 팔로군전선 총지휘부의 긴급 이동명령을 받은 윈터우디촌(雲頭底村)의 조선의용대는 청장하를 건너 마전을 지나 팔로군전선 총지휘부의 뒤를 따랐다. 당시 조선의용대에는 1백여 명의 무장한 전투원 외에도 정치사업 일꾼과 후방사업 일꾼이 있었고 10여 명이나 되는 여성대원들과 가족들도 있었다. 이 때 팔로군전선 총지휘부 정치부 주임 라서경이 인솔하는 팔로군 경위부대와 박효삼 지대장이 인솔하는 조선의용대 전투원들은 요문구 골짜기 서쪽과 동쪽 산머리에 올라 적의 침입을 저지하면서 비전투원들이 북쪽 헤이룽동(黑龍洞)으로 탈출하는 것을 도왔다. 팔로군 부참모장 줘취엔이 요문구에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오던 중 십자령에서 전사한 것도 이때였다.
저녁 땅거미가 지고 일본군이 물러난 후 조선의용대 40여 명의 비전투원은 전투원들과 갈라져 헤이룽동과 하청구를 거쳐 5월 27일 한밤중에 화옥산에 이르렀다. 여기서 40여 명은 진광화의 지시에 따라 다시 네 개의 분조로 갈라졌다. 그런데 진광화ㆍ윤세주가 속한 분조가 5월 28일 일본군에 발각되어 총격을 받아 진광화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윤세주 또한 크게 다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근처 움집에 은신해 있다가 며칠 뒤 순국하였다.
한중공동 항일투쟁과정에서 순국한 윤세주와 진광화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는 무한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해방일보』 1942년 7월 31일 자에 윤세주와 진광화를 비롯한 조선의용대원들의 합동장례식 거행 예정 기사가 게재되었다. 추도식은 9월 18일에 진행하기로 했다. 추도식은 팔로군 총사령관 주더(朱德)가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그가 이 자리에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 조선의용대의 애국적 기개와 국제주의 연대와 한국의 독립운동을 관계를 강조하는 추도문을 낭독하였다.
우측에 윤세주 열사의 묘가, 좌측에 진광화 열사의 묘가 가묘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고, 조선의용군열사 기념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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