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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 나자구사관학교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한글 길림성 왕청현 나자구진 태평촌
현지 吉林省 汪淸县 羅子沟镇 太平村
역사적 의의
1914년 경 이동휘가 설립한 항일무장투쟁을 준비하기 위한 사관학교 터
설명
나자구사관학교(羅子溝士官學校)는 일명 ‘대전학교(大甸學校)’ 또는 ‘동림학교(東林學校)’라고도 불렸다. 나자구사관학교의 설립과 관련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914년 경 이동휘(李東輝)를 비롯한 김립(金立)ㆍ오영선(吳永善) 등이 항일무장투쟁을 위해 국자가(局子街)에 있던 광성학교(光成學校) 일부 학생들을 이곳으로 거느리고 와 사관학교를 설립하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사관학교 설립에는 이 지역에 살던 한인들의 도움도 컸다고 한다.
이 무렵 나자구에는 5천여 명 이상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다. 사관학교 학생들은 처음 80여 명 정도였으나, 나중에는 200명으로 많이 늘어났다. 학교 운영비는 이종호(李鍾浩)가 담당하였다. 교장은 이동휘였고, 김립ㆍ김규면(金圭冕)ㆍ장기영(張基永)ㆍ오영선ㆍ김영학(金永學) 등이 교관을 맡았다. 교육내용은 정신교육을 통한 독립군의 양성이었다. 1915년 일본영사관의 강박에 의하여 중국당국이 폐쇄하였다.
1917년 1월 이들은 다시 훈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에 이동하여 북일학교(北一學校)를 세우고 독립군 인재를 양성해 나갔다.
왕칭현(汪淸縣) 나자구진(羅子溝鎭) 태평촌(太平村) 서쪽 언덕 위에 있는 나자구사관학교 옛터는 현재 왕청-동녕(汪淸-東寧) 도로가 변두리를 지나고 있지만, 잡초와 나무가 우거진 사이로 밭이 형성되어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옛 학교 터에는 드문드문 기초석이 남아있으며, 연병장은 밭으로 변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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