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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우수리스크 거주지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한글 연해주 우수리스크시 보르다르스코로 거리 38번지
현지 Уссурийск, улица Володарского 38
역사적 의의
러시아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최재형이 말년에 거주했던 장소
설명
최재형(崔在亨, 1860-1920)은 함북 경원(慶源) 출신이다. 1869년 아버지를 따라 러시아 포시예트(Posyet) 지역의 지신허(地新墟)로 이주하였다. 그는 통역을 비롯하여 러시아군에 우육(牛肉)을 조달하는 축산유통업과 도로·건물을 건설하는 건축업 등으로 재산을 모았다.
재산의 상당 부분은 의병을 비롯하여 안중근(安重根)의 하얼빈 의거에 여비를 보조하는 등의 독립운동자금으로 사용되었다.
러시아에서 정치·사회·경제 방면에서 활동하여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1897년 7월 니콜라이((Nicholas)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연추(煙秋)지역이 러시아 행정지역에 편입되어 도소(都所)가 설치되자 이를 책임지는 도헌(都憲)으로 선출되었다. 이러한 입지를 바탕으로 그는 연해주지역 한인사회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활동하였다. 1908년 5월 조직된 동의회(同義會)의 총장,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한인신문 『대동공보(大東共報)』 사장, 1913~1914년 한인 자치기관인 권업회(勸業會) 회장을 지냈고, 1914년 러시아 한인이주50주년기념회 회장을 지냈다. 그의 영향력은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18년 6월 열린 제2회 전로한족대표회의에서도 이동휘(李東輝)와 함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토지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최재형의 활동은 1918년 8월 일본군이 연해주로 출병하면서 위축되었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우수리스크(Ussuriysk)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비밀리에 한인부대에 무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1920년 4월 참변 당시 그는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그와 함께 한인지도자였던 김이직(金理直)·엄주필(嚴柱弼)·황경섭(黃景燮)도 피체되었는데 모두 일본군에 피살되고 말았다. 이들의 시신은 유족들에게 돌려주지 않아 최재형이 어디에서 순국하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2019년 3월 28일 '최재형선생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전시는 독립기념관에서 최재형의 삶과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운영은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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