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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한의사 의거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일본
대륙 아시아 지역 도쿄도
문헌상
한글 도쿄도 치요다구 고쿄
현지 東京都 千代田区 皇居
역사적 의의
서상한이 1920년 4월 29일 영친왕과 일본 황실의 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의 결혼식장에 폭탄 투척을 계획했던 곳
설명
서상한은 1918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다시 세이소쿠영어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학비 조달이 어려워 신문 배달, 공원, 우체부 등으로 일하면서 고학하였다. 그는 노령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던 친형 서상일의 영향을 받아 항일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있었으며, 1920년 1월에는 유진걸, 김낙준 등 동지들과 함께 '도쿄노동지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이는 도쿄에 있던 '고학생동우회'와 맥락을 같이하는 단체였는데 서상한은 이 단체를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계획하였다.
서상한은 1920년 4월 29일 황거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영친왕과 일본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의 결혼식에 폭탄 투척을 계획하였다. 서상한을 비롯한 유학생 20여 명은 이 결혼식에 사이토 조선총독을 비롯한 식민통치 수뇌부와 이완용 등 매국노들이 참가한다는 것을 전해 듣고 이들을 폭살하고자 하였다.
서상한은 동지 양주영 등과 함께 폭탄을 제조하는 등 준비작업에 들어갔는데, 일경의 탐지로 사전에 발각되어 1920년 4월 11일 체포되었다. 1920년 9월 22일 도쿄공소원에서 금고 4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상한은 1922년 초에 다시 유진걸 등과 함께 '고학생동우회'의 분신으로 '형설회'를 조직하였으며, 그 후에는 무정부주의 단체인 도쿄의 흑우연맹과 제휴하여 노동운동에 전념하였다. 광복 후에도 계속 일본에 거주하다가 1967년에 도쿄에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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