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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 건물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상하이
문헌상 霞飛路 1014弄 29號 2층
한글 상해시 포동신구 회해중로 1270호 30
현지 上海市 浦东新区 淮海中路 1270號 30
역사적 의의
상하이(上海)에서 안창호 및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가 활동하였던 건물
설명
1920년대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단체 흥사단(興士團)의 원동(遠東) 지부격인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가 결성됐다. 흥사단은 1913년 5월 안창호에 의해 창립된 단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되었다. 명칭은 1907년 유길준이 설립한 계몽운동 단체 흥사단에서 유래했다.
1919년 안창호는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내무총장겸 국무총리 서리로 취임한 그는 ‘정부’의 조직 강화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운동 일선에 투입·활약해 줄 청년 인재들이 필요하였다. 이에 안창호는 미주에 있는 흥사단원 박선제와 김항작을 상하이로 불렀다. 1920년 1월 상하이에 도착한 이들은 인재들을 모으기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상하이 주요 인사들에게 흥사단 약법을 인쇄·배포하면서 흥사단의 주의와 취지를 선전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 결과 1920년 2월부터 많은 청년들이 흥사단에 입단하기 시작했다. 초기 흥사단원으로 가입한 이들은 주로 상하이 지역에 조직되었던 신한청년당 당원들이었다. 이를 토대로 같은 해 12월 29일 상하이에서 흥사단 대회를 처음 개최하고 조직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후 1921년 9월 미주의 흥사단을 본부로 하고 국내를 포함한 중국·연해주·일본을 관할로 하는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라는 명칭으로 정식출범하였다.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는 중국에서 한민족의 독립을 최고 목표로 하는 독립운동 실천에 주력했다.
흥사단원동임시위원부는 처음 ‘모이명로 빈흥리(慕爾鳴路 彬興里) 301’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1924년 3월에는 난징(南京)에 동명학원(東明學院)이 설립되자 ‘남경(南京) 관가교(管家橋) 태평항(太平巷) 6호’에 사무실을 이전했다. 그러나 난징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어 집회가 허용되지 않자 1925년 1월 원동대회를 마친 뒤 다시 상하이 ‘하비로(霞飛路) 대덕리(大德里) 1,014롱(弄) 30호’로 옮겼다. 이후 잠시 ‘미인리(美仁里) 10호’를 사용하다가 1929년부터는 ‘하비로(霞飛路) 1,014호 26호’를 사무소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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