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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상하이 청사 터 (마랑로)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상하이
문헌상 백래니몽 마랑로 보경리 4호 / 白來尼夢 馬浪路 普慶里 4號
한글 상해시 황포구 마당로 306로 4호
현지 上海市 黄浦区 马当路 306弄 4号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청사
설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하이(上海) 프랑스 조계에서 수립된 이래 여러 차례 청사를 이전하였다. 일제의 압박과 재정적인 문제, 프랑스 조계 당국의 청사 폐쇄조치 등이 그 원인이었다. 임시정부는 1919년 8월 초를 전후로 ‘하비로 321호’로 청사를 이전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프랑스 조계 당국은 조계 안에서 활동하는 한인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옹호 내지 보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끊임없는 요구로 인해 1919년 10월 17일 임시정부 청사 폐쇄를 명령하였다. 페쇄 조치에 따라 청사는 폐쇄되고 말았다.
청사 폐쇄 조치에 따라 새로운 임시정부 청사는 마련되지 못했고, 정부 기구는 기관 책임자의 주소지로 분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재정적인 문제와 활동의 제약 등으로 정부 기구가 모두 모인 청사를 마련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된다. 내적인 요인도 작용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임시정부의 활동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외교활동이 열강의 외면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자 외교방략에 대한 재검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연통제(聯通制)와 교통국(交通局)이 일제의 탄압으로 붕괴되면서 국내에서 유입되던 인적·물적 자원이 줄어들게 되었다. 더불어 임시정부와 연계되어 있
던 만주와 연해주 지역의 독립운동단체와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및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등의 독립군이 각지로 흩어지게 되면서 임시정부의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마지막으로 임시정부 내부의 갈등, 다시 말해 이승만(李承晩)의 지도력 결핍과 이념과 지역 간의 갈등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처럼 1920년대 임시정부는 내외적인 요인으로 조직과 운영의 어려움에 봉착했고 침체상태에 빠졌다. 임시정부를 통할해야 할 이승만은 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1920년 12월에서 1921년 5월까지 단 6개월만 부임하여 활동했고, 이외 전 기간을 미국에서 임시대통령으로 활동했다. 그마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다. 특히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 이후 다수의 인사들이 임시정부를 떠나 ‘정부’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임시정부는 지도체제 변경을 통해 활로를 모색했다. 1925년과 1927년 4월 각각 헌법 개정을 통해 정부의 내각을 구성하여 정부의 안정적인 운영의 기초를 다졌다.
임시정부 청사 역시 이러한 시기에 안정적으로 마련되었다. 안정적인 청사를 구성한 시점은 1926년 7월경이었다. ‘백래니몽(白來尼夢) 마랑로(馬浪路) 보경리(普慶里) 4호’에 마련된 청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곳에서 1932년 5월 항저우(杭州)로 이전할때까지 6년 동안 활동했다. 1980년대 후반 임시정부의 청사 건물을 찾기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한민국정부와 상하이시는 연대관계를 맺고 1988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임시정부 유적지를 찾기 위한 공동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상해시 노만구 마당로 306롱 4호(上海市 盧灣區 馬當路 360弄 4號)’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임시정부가 사용했던 청사 건물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청사 건물은 1990년 6월 5일 상하이시 노만구(盧灣區)에서 문물보호단위로 지정했고, 1992년 본격적인 복원공사가 추진되었다. 그 결과 한중 양국은 1993년 4월 13일 복구공사 완공기념식을 거행하고 일반인에게 정식으로 공개했다. 전시는 독립기념관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이후 몇 차례 보완이 이루어졌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전시물을 전면 교체하였다. 2012년에는 노만구가 황포구(黄浦區)에 통합되면서 현재 황포구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상태이다.

2019년 관람 동선의 용이성을 위해 매표소 리모델링을 진행하였다. 현재 청사 관리자를 포함한 총 35명의 직원이 근무중이며 입장료는 20원(元)이다. 2018년 관람인원은 20만명이었다. 정기휴일은 없고,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점심시간 11시 30분에서 오후 1시 30분까지는 잠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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