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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촌 순국선열전적비

사적지 종류 기념비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산시성
문헌상
한글 산서성 좌권현 상무촌(상무촌소학교 교문 앞)
현지 山西省 左权县 上武村(上武村小学校 校门 前)
역사적 의의
상우촌(上武村)의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설명
1938년 10월 25일 우한(武漢)이 함락되자 조선의용대는 대본부를 구이린(桂林)으로 이전하였다. 총대장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한 조선의용대원들은 동녕가(東靈街) 1호에 본부를 두었다. 이후 일제의 빈번한 공습으로 인해 동녕가에서 시가원(施家園)으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이때 최창익은 이익성이 거느린 제2구대와 함께 호북에서 활동하다가 황하를 건너 연안으로 갔다. 당시 30여 명의 청년들은 1940년 초 타이항산(太行山) 항일근거지로 이동하였다. 1941년 1월 타이항산에 모인 청년들은 상우촌(上武村)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이 단체는 조선독립동맹의 전신이다.
상우촌은 작은 산간마을이다. 1941년 8월 조선청년연합회는 이 마을에 조선의용대 신입대원들을 교육하기 위해 간부훈련반을 개설하였다.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지대장 박효삼이 교장을 맡고, 최창익이 정치위원을 맡았다. 최창익ㆍ김학무ㆍ한빈ㆍ윤세주ㆍ진광화ㆍ박무 등이 교사로 재직하였다. 훈련반의 훈련내용은 정치와 군사및 과외활동이었다. 정치는 조선 문제와 정치상식과를 설치하여 교육했다. 윤세주는 조선 문제를 강의하면서 사회경제 및 혁명의 동력에 대해서도 교육시켰다. 상우촌에 개설된 간부학교에서는 많은 항일 동량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조선의용대의 활동을 기리기 위하여 2002년 12월 26일에 대한민국의 순국선열유족회와 중국 줘취엔현(左權縣) 정부는 상우촌에 순국선열전적비를 건립하였다. 이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음각되어 있다.

"이곳 상무촌은 일체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조선의용군이 중국 인민과 함께 싸운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조선의용군은 조국 광복을 위해 1940년 7월부터1942년 2월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전투에서 많은 공적을 쌓았고 희생도 컸다. 태항산 항일전 승리 60주년과 한중수교 10주년에 즈음하여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2002년 10월 10일 좌권현에서 최초로 태항산항일전 희생열사 추모제와 한ㆍ중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으며, 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공훈을 기리고 희생을 되새기기 위해 이 비를 세우는 바이다.
2002년 12월 26일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중국좌권현인민정부."

훙푸사(弘福寺)의 앞쪽 공터에 세워져 있으며, 상무촌 순국선열기념비는 옆에 중국혁명열사 기념비가 세웠져있다. 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청소를 해주고 있다. 비문은 거헌충(巨獻忠)이라는 중국인 이름이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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