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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병영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광둥성
문헌상
한글 광동성 광주시 선열동로 광주군구 경비사령부
현지 广东省 广州市 先烈东路 广州軍区 警备司令部
역사적 의의
한인 청년들이 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전에 예비훈련을 받던 곳
설명
황포군관학교의 입교생은 정규과정에 들어가기 전 예비과정으로 입오생(入伍生, 예비생)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었다. 입오생들은 광저우(廣州) 근교 국민혁명군의 군사시설에 수용되어 사관과정 이수에 필요한 기초적 군사지식을 교육받는 동시에 군사 요충지 경비와 실전에도 동원되었다. 이러한 입오생들이 수용된 곳 중 하나가 사하병영(沙河兵營)이며 당시 한인 청년들이 상당수가 이곳에서 예비 훈련을 받았다. 사하병영의 입오생부 교관으로 박효삼(朴孝三)·강평국(姜平國)·오성륜(吳成崙)·이유곤(李柳昆) 등이 근무하였다. 사하병영의 한인 청년들은 쑨원(孫文)의 호법 정부를 지키기 위해 중국 혁명에 참가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사하병영 위치는 광저우로 들어오는 동쪽 길목이다. 사하(沙河)와 연당(燕塘) 일대에 국민당 장발규(張發奎)의 제12사 36단이 주둔하였고, 연당은 지형이 높아 포병부대가 설치된 군사요지였다. 1927년 광주코뮌이 발생했을 때 한인 공산당군사지휘관 양달부(楊達夫)가 사하진을 공격했다. 양달부는 전쟁을 하지 않고 국민당부대 지휘관의 투항을 받아 내고 600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또 연당에 있는 국민당부대도 공산당이 쉽게 제압했다. 국민당 정규부대가 가장 많은 사하진과 연당 공격이 쉽게 끝나자 양달부는 코뮌본부에 보고하기 위해 사하진을 떠나고 병사들만 남아서 사하진을 수비했다.
사하진에 남은 병사들은 최용건(崔庸健)이 인솔하는 특무영 제2연대, 교도단 2영 5련 등 한인 150여 명이었다. 이들은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지 못한 채 사하진을 지키던 중 전쟁의 판세가 변하였다. 다음 날 아침 국민당부대가 사하진을 포위했고, 사하진 방어를 맡은 한인 병사들은 전멸했다. 한인 병사 150명이 희생된 사하진 병영이 어디였는지,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입오생들이 훈련을 받던 사하병영은 현재 중국인민해방군 광주경비구 광주경비사령부로 사용하고 있다. 1920년대 사하일대는 황량한 군사지구였는데 현재 사하일대는 대형 복장도매시장과 원단도매시장 등이 형성되고 현대식 도시로 발전하여 예전 모습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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