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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당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상하이
문헌상 八仙橋 三一堂
한글 상해시 황포구 저해동로 262호
현지 上海市 黄浦区 宁海东路 262号
역사적 의의
상하이 한인들의 종교 활동의 공간이자 독립운동의 집회장소로 활용되었던 곳
설명
1910년 일제의 강제병탄을 전후로 다수의 한인들이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주하거나 망명했다. 이주 한인들 중에는 기독교인들이 상당수 있었고, 이들은 서양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보다 용이하게 현지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한인 기독교인들은 상하이 한인을 위한 별도의 예배당이 없었던 이유로 서양 선교사가 세운 교회나 중국기독교청년회 건물을 이용하여 종교 활동을 전개했다. 스촨루(四川路) 중국기독교청년회사무실이나 미국해군청년회관을 통해 종교 활동을 전개한 것이 그것이었다. 상하이 한인 기독교인들은 1919년 발표된 독립선언으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됐다.
3·1운동 직후 다수의 한인들이 망명해오면서 기독교인이 증가했다. 신도가 많아지자 함께 예배할 장소가 마땅치 않게 됐다. 이에 피치(Gorge Field Fitch)목사의 주선으로 베이징루(北京路) 18호에 위치한 ‘북경로 예배당’을 이용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에는 교민단 사무소를 예배장소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1921년에 이르러서는 기독교인이 더욱 증가하고 교회의 규모도 커짐에 따라, 집회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됐다. 이에 프랑스조계 ‘西新橋 三一里’에 위치한 삼일당(三一堂)을 무상으로 사용하게 됐다.
삼일당은 미국 전도국(傳道局)이 중국 기독교인을 위해 미국 감리교회에서 1879년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교당의 기능을 상실하고 1917년에는 중국인 소학교로 활용됐다. 1921년 한인이 이곳을 교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부활절 주일부터 한인 기독교인들은 삼일당을 한인교회로 사용했다. 삼일당은 한인 전용예배당으로써 종교 활동이 가능하였고, 외부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야간에도 늦게까지 집회나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종교 활동 이외에도 인성학교의 학예회·졸업식, 국치기념일·건국기원절(개천절)·‘3.1독립선언일’ 등의 기념행사, 국민대표회의 촉진회 연설회·국민대표회기성회 총회 등의 국민대표회의 관련 행사, 순국 추도식과 환영회 등의 다양한 집회장소로 활동됐다. 삼일당은 본당인 모이당(慕爾堂)의 신축 비용 마련을 위해 1927년 택지를 팔게 됐다. 이후 삼일당자리는 철거되어 상가건물과 주택단지로 변용됐다.
삼일당은 예배공간으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교민사회의 수많은 집회와 행사를 통해서 민족정체성과 공동체의식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곳으로 활용됐다. 상하이 한인들이 전용공간으로 종교 활동 뿐 아니라 공회당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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