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사적지명ㆍ주제어을 자유롭게 검색하신 후,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세요.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초성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ㆍ사적지명ㆍ주제어을 초성으로 검색하여,그와 관련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초성 < > 에 대한 사적지는 총 95 건입니다.

베이징 신채호 거주지 터 (석등암)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베이징시 서성구 석등호동 12호 일대
현지 北京市 西城区 石灯胡同 12号 일대
역사적 의의
1923년 9월부터 1924년 2월까지 베이징에서 신채호가 거주했던 곳
설명
신채호(申采浩)는 가족들을 국내로 보내고 1923년 1월 경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여 의열단의 선언문인 「조선혁명선언」과 경고문 「조선총독부 관공리에게」를 탈고하였다. 신채호는 류자명(柳子明)을 통해 김원봉(金元鳳)를 소개받았고 의열단이 주장하는 바를 문서로 작성해 주었던 것이다. 신채호는 1923년 상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폐회되고 창조파를 중심으로 한 신정부 수립계획도 불투명해지자 크게 실망하였다.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와 석등암(石燈庵)에서 역사서 편찬에 몰두한 것으로 보인다. 정화암(鄭華岩)은 1924년 4월 20일 아나키스트 단체인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조직할 때 신채호가 순치문(順治門) 내 석등암에 칩거하며 『사고전서(四庫全書)』를 섭렵하고 역사서 편찬에 몰두하느라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단편적인 행적을 추려보면 신채호는 1923년 하반기부터 1924년 4월 사이 석등암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며 승려가 아닌 투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명확한 위치는 근거자료의 부족으로 비정할 수 없고, 옛 건물이 일부 남아있으나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당시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다. 2002년 조사 당시 석등암 13호 일대를 신채호 거주지로 비정했으나, 이보다는 현재 아파트로 변모된 석등암 터(6호) 근처를 넓게 비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