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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신채호 거주지 (금시방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베이징시 서성구 금시방가 21호 일대
현지 北京市 西城区 锦什坊街 21号 일대
역사적 의의
신채호가 1920년 4월 베이징으로 돌아와 박자혜와 혼인하여 거주하였던 곳
설명
베이징(北京)에서 활동하던 신채호(申采浩)는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1919년 4월 열린 제1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 국무총리로 이승만(李承晩)을 선출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9월 열린 제6회 임시의정원회의에서도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자는 의견에 반대하였다. 이후 김두봉(金枓奉)·한위건(韓偉健)·신백우(申伯雨) 등과 『신대한』을 발간하여 주필을 맡아 임시정부에 대한 비판에 나섰으나 결국 불화가 생겨 발행이 중단되었다. 1920년 4월 경 신채호는 북경으로 돌아왔고 『천고(天鼓)』 발행에 집중하였다. 중국인과 연합전선을 형성할 목적으로 발행한 순한문 잡지로 1921년 1월 1일 첫 호가 발행되었다. 김창숙(金昌淑)·박숭병(朴崇秉)·이회영(李會榮)·한영복(韓永福) 등도 작업에 참여하였다. 집필은 초두호동(炒豆胡同)의 박숭병 집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베이징으로 돌아왔을 때 신채호는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李恩淑) 여사의 중매로 박자혜(朴慈惠)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간호사였던 박자혜는 3·1운동 때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간우회사건’ 이후 베이징 연경대학 의예과를 다니고 있었다. 신혼집은 금시방가(锦什坊街)에 마련하였다. 1921년 음력 1월 첫째 아들 신수범을 얻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1922년 박자혜와 아들을 국내로 보냈고, 고향 친구인 홍명희(洪命憙)에게 생계를 부탁하였다. 신채호는 생계를 위해 글을 써서 『조선일보』와 관계가 있던 홍명희를 통해 기고하였으며 그 원고대금을 부인에게 보내었다.

도시개발이 진행되어 도로를 제외하고 주변 건물은 크게 변화하였다. 신채호 거주지는 21번지로 알려져 있으며 건물의 증축 및 개축 상황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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