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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신채호 거주지 터 (관음사)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북경시 동성구 방가호동
한글 베이징시 동성구 동직문 전영강호동 9호 부근
현지 北京市 东城区 东直门 前永康胡同 9号 부근
역사적 의의
1924년경 신채호가 북경에서 거주했던 곳
설명
석등암(石燈庵)에서 역사편찬에 몰두하던 신채호는 북신교(北新橋) 부근 관음사(觀音寺)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61일간의 계를 마친 후 수도승 생활을 하였다. 정화암(鄭華岩)이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을 조직할 당시 신채호가 석등암에 있었다고 회고한 것을 근거로 하면, 관음사로 옮긴 시기를 1924년 4월 전후로 추정할 수 있다. 관음사에 머무를 당시 신채호의 행적은 이회영의 아들인 이규창(李圭昌)의 회고를 통해 찾을 수 있다. 1924년 4월경 이회영의 가족들은 관음사호동(觀音寺胡同)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규창은 집으로 찾아온 신채호를 만났다. 두 사람이 만난 시기는 1924년 6~7월로 추정된다. 신채호가 스님의 행색을 하고 찾아왔기에 승려의 계를 받았던 두달 정도의 기간을 역산하면, 4~5월 경에는 관음사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음사에 기거하는 동안 신채호는 「유마경」과 「방엄경」에 심취하였으며, 특히 마명이 지은 『대승기신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이곳에서 숙식이 해결되자 조선사연구에 다시 몰두하였다. 『전후삼한고』의 집필은 이 시기 이루어졌다. 1924년 말 신채호는 관음사에서 나와 소경창(小經廠)에서 이호영(李護榮, 이회영일가 여섯째)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투숙하면서 『동아일보』에 글을 기고하였다.

신채호가 거주한 관음사가 있던 자리는 현재 전영강호동(前永康胡同) 9호와 11호 일대로 추정된다. 관음사 앞의 골목이 관음사호동(觀音寺胡同)으로 불렸으나 현재 전영강호동에 포함되었다. 관음사 일대는 주거단지로 변모하여 과거 흔적은 남아있지 않으나 전영강호동 표지석에 관음사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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