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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황 묘소

사적지 종류 묘역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헤이룽장성
문헌상 연수현 유하진
한글 흑룡강성 연수현 연하진
현지 黑龙江省 延寿县 延河镇
역사적 의의
연수현에서 신민부와 한국독립당 활동했던 박세황의 묘
설명
박세황은 1882년 1월 7일 평안남도 강서군 증산면 오하리에서 박양수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자는 북농(北農)이다. 18세 되던 해에 고향에서 서당을 설립하여 선생이 되었으며, 3ㆍ1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23년 길림성 동빈현(현재 연수현) 흑룡진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신민부에 참여하여 1926년 흑룡진에 신창학교를 세웠고, 신민부가 군정파와 민정파로 나누어졌을 때 민정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27년 8월 동빈현 총판의 신분으로 북만주 한인교육회의에 참석한 뒤 대량자학교ㆍ대련표자학교ㆍ동광학교ㆍ보명학교 등을 설립하여 교육활동에 전력을 다하였다.
1930년 7월 위화현의 김광택의 집에서 한국독립당이 창당되자 홍진ㆍ지청천ㆍ신숙 등 40여 명의 대표와 함께 당장(黨章)과 당의 규약을 제정하는데 참여하였다. 주로 박관해ㆍ이탁ㆍ문학빈ㆍ김인대ㆍ원재룡 등과 함께 독립군의 군비를 지원해 주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일제에 체포되었으며 감옥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2년 10월 4일 사망하였다.
그의 묘소는 후손들이 돌보고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현재 손주 사위인 김병학(金炳學, 1938년생)이 묘소를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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