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사적지명ㆍ주제어을 자유롭게 검색하신 후,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세요.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초성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ㆍ사적지명ㆍ주제어을 초성으로 검색하여,그와 관련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초성 < > 에 대한 사적지는 총 59 건입니다.

맹진나루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허난성
문헌상
한글 하남성 낙양시 맹진현 황하대교 자리
현지 河南省 洛阳市 孟津县,黄河大桥 位置
역사적 의의
1941년 초 조선의용대 주력이 낙양에서 화북지방으로 이동할 때 세 차례에 걸쳐 황하를 건넜던 나루 터
설명
1938년 10월 10일 무한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는 계림ㆍ장사ㆍ형양ㆍ남창ㆍ노하구ㆍ낙양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 초 본부를 중경으로 이전한 뒤 11월 4일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북상을 결정하였다. 이들의 북상은 20여 만의 동포가 이주해 있는 화북에 진출하여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려는 뜻에서였다. 이에 따라 조선의용대 총대부의 일부 간부들과 1940년 10월 이미 중경으로 집결한 제1지대(지대장 박효삼, 정치지도원 윤세주), 제3지대(지대장 김세일) 대원들은 1941년 새해 첫 새벽 중경을 떠나 장강삼협과 노하구를 거쳐 2월 초 낙양에 도착하였다.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황하도강은 제3지대와 제1지대, 그리고 제2지대 순으로 전후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들은 낙양 맹진부두에서 목선을 타고 황하를 건넌 뒤 국민당 제24집단군 사령부가 주둔해 있는 임현에 일단 집결한 다음 태항산으로 향했다.
1941년 7월 팔로군의 환영을 받으며 태항산 유격근거지에 도착한 조선의용대 제1ㆍ2ㆍ3지대 전체 대원들은 산서성 요현 태항산중의 동욕에서 미리 그곳에 와있던 화북조선청년연합회 회원들과 함께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조직하였다.
당시 맹진나루터(구 맹진)로 추정되는 황하대교 주변 황하의 강폭은 약 500m에서1㎞ 가량이며, 1982년 전체 길이 2.4㎞의 황하대교가 완공되었다. 현재 지도상에 보이는 맹진은 신맹진으로 당시 맹진과는 다른 곳이었다. 현지 향토사학자 재문발은 조선의용대가 북상시 황하를 건넌 맹진나루가 현재의 맹진(신맹진) 북쪽에 있는 백학진일 가능성도 있다고 하였으나, 맹진나루는 구맹진에 있었던 것으로 지금의 황하대교 자리 또는 그 인근 동쪽의 회맹진으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