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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저우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전시관 (낙군사)

사적지 종류 건물,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광시좡족자치구
문헌상
한글 광시좡족자치구 류저우시 어봉구 유석로 2호
현지 广西壮族自治区 柳州市 鱼峰区 柳石路 2号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는 곳
설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저우(廣州)에 머문 지 3개월 만인 1938년 10월 류저우(柳州)로 피난을 떠났다. 일본군이 포산(佛山) 근처까지 진격해오자 다시 피난을 떠난 것이었다 .광저우 시내와 포산에 머물고 있던 임시정부와 가족들은 포산역에 집결한 뒤 산수웨이(三水)로 집결하였다. 포산에서 산수웨이까지는 중국 측에서 마련해 준 기차로 이동하였고, 산수웨이에서부터는 화륜선이 이끄는 목선을 타고 류저우로 이동했다.
임시정부는 11월 30일 류저우에 도착하였다.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류저우에서 6개월간 머물렀다.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생활했던 건물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임시정부 요인들은 “江北 潭中路 50호에 있는 3층 양옥집"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류저우시에는 양옥이 2~3채밖에 되지 않았고, 그중 하나가 낙군사(樂群社)였다. 낙군사는 1920년대 말 러시아가 세운 프랑스식 건물이었다 .최초 버스터미널로 사용되었다가 1935년터 명칭을 '낙군사'로 개명하고 여관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낙군사는 여관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임시정부 요인들이 머물렀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확증할 만한 자료의 한계로 단정할 수 없다.
200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항일투쟁활동진열관(大韓民國臨時政府抗日鬪爭活動陳列館)이 류저우시 낙군사 건물에 개관되었다. 류저우시는 1928년 건축된 낙군사를 임시정부 청사로 주장하고 2001년 낙군사 건물을 매입하여 복원하였다. 이후 2004년 독립기념관과 함께 건물을 정비하고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자료의 한계로 임시정부가 낙군사에 청사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류저우시가 낙군사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임시정부 '구지(舊址)'라는 명칭을 사용하려 했지만, 독립기념관은 그 사실을 확증할 수 없다고 설득하여 '구지'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항일투쟁활동진열관은 2006년 전국중점문물단위로 지정되었다. 1층은 영상실과 당시 사무실과 침실을 재현해 놓았고, 2층은 임시정부와 관련된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관리인원은 총 8명이다. 2018년 독립기념관에서 전시 및 보수지원을 하였다.
낙군사가 임시정부 청사 및 요인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는 확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6개월 동안 머물렀음을 증빙하는 문헌자료와 관련 사적지가 다수 남아있고, 류저우시 정부에서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제공하기 있기때문에 청사라는 개념보다 임시정부가 류저우에서 활동했던 사실을 기념하는 전시관으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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