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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 명동학교

사적지 종류 건물,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길림성 화룡현 명동
한글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
현지 吉林省 龙井市 明东村
역사적 의의
김약연 등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북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민족학교
설명
명동촌에 설립된 명동학교(明東學校) 명동서숙(明東書塾)으로 출발하였다. 1908년 4월 27일 설립된 명동서숙(明東書塾)은 1907년 폐교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계승한 학교였다. 이를 위해 명동촌 형성 당시 교육기관으로 세운 규암재(圭巖齋)·소암재(素巖齋)·오룡재(五龍齋)를 통합 개편하였다. 운영은 숙장 박무림(朴茂林), 숙감 김약연(金躍淵), 재무 문치정(文治政)이었으며, 교원으로 김학연(金學淵, 김약연 사촌) 남위언(南韋彥)·김하규(金河奎)·여준(呂準) 등이 부임하였다.
명동서숙은 1909년 4월 10일 교명을 명동학교로 바꾸었다. 이어 신민회에서 파견된 북간도교육단장 정재면(鄭載冕)을 교사로 초빙하면서 본격적으로 신교육기관이자 기독교학교의 모습을 갖추었다. 1910년 3년제 중학부가 증설되었고, 1911년 명동촌을 찾아온 이동휘(李東輝)가 부흥사경회에서 여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후 여학부도 설치되었다. 여교원으로 정신태(鄭信泰), 이의순(李義順, 이동휘 차녀)·우봉운(禹鳳雲) 등을 초빙하였다.
명동학교는 북간도지역 한인교육의 중심역할을 하였기에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1917년 새로 교사를 신축하였으나 경신참변 당시 장총 2백여 정이 숨겨져 있다는 구실로 일본군에게 소각되었다. 당시 연길감옥에 구금되어 있던 김약연을 대신하여 교장을 맡고 있던 김정규(金正奎)는 교직원 및 주민들과 함께 학교 재건에 나섰다. 1922년 6월에 벽돌강당이 신축되었고, 1923년 6월 목제강당에 교실 5칸이 마련되었다. 1923년 봄, 출옥한 김약연은 명동학교 교장으로 재취임하였으며 기독교 이념에 기초한 교육을 강화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당시 학생들이 종교와 교육의 분리를 주장하고 교장 퇴진까지 요구하면서 동맹휴학에 들어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대흉년으로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명동소학교만 남고 명동학교 중학부는 1925년 폐지되었다.

명동학교는 용정시정부에서 복원을 진행하여 2010년 8월경에 완공되었다. 2011년 8월 독립기념관의 지원을 받아 명동촌역사기념관으로 전시를 새롭게 꾸몄다. 2018년 중국 당국은 명동학교를 ‘중국조선족교육제1촌’으로 지정하였다. 또한 명동촌을 관광특구로 삼아 윤동주의 이름을 내세운 야영지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한·중 양국은 명동학교를 비롯하여 명동촌을 인식하는 데 견해차이가 있어 향후 긴밀하게 협력하여 조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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