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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 현석칠 초묘

사적지 종류 장소, 묘역, 표지석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룽징시 지신진 합성리촌 동산 (옛 교회 공동묘지)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智新镇 合成利村 东山(옛 교회 공동묘지)
역사적 의의
3·1운동에 참여했던 목사 현석칠의 묘
설명
현석칠(玄錫七)은 1880년 1월 23일 평남 용강(龍岡)에서 출생했다. 1911년 최병헌(崔炳憲)·전덕기(全德基)·오기선(吳基善)·현순(玄楯) 등과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였다. 신학을 졸업한 이듬해 목사를 안수를 받았다. 이후 해주·서울·평양·공주 등지에서 목회활동을 하였다. 1919년 4월 1일 공주(公州)시장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들이 중심된 3·13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였으며, 한성정부(漢城政府) 수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1920년 여름까지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수원·영변·평남 신창지방에서 감리사로 활동하였다. 1935년 은퇴한 후 한 때 평양에서 여관을 경영하였다.
1938년 북만지방에서 목회활동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1940년 이후 일제가 교회를 친일화하면서 모든 교회들을 통폐합하면서 목회활동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이에 은퇴를 결정하고 용정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동북교회(옛 용정감리교회)’를 후원하던 중 위암이 발병하여 투병하다가 결국 1943년 9월 23일 별세하였다. 묘는 룽징 교외의 동산의 기독교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유가족들은 동아기독교회 출신 신명균(申明均) 목사가 기록한 묘비를 세웠다.

1943년 동산공묘에 현석칠 묘가 먼저 자리를 잡은 이후 윤동주와 송몽규의 묘가 차례로 왼쪽에 들어섰다. 묘비는 중국 문화혁명 당시 훼손되었는데 2003년 8월 윤동주의 매제인 오형범 장로가 발견하여 감리교 본부에 알렸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중앙교회가 공동으로 묘를 정비하였으며 현석칠의 후손들과 함께 재조명 작업이 추진되었다. 2004년 8월 서훈을 받고 2005년 10월 대전 국립묘지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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