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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 3.13독립만세시위 기념비

사적지 종류 기념비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연길현 용정촌 북쪽 서전대야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룽징시 광화서로 136호(룽징 제1유아원) 일대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光华西路 136号(龙井 第1幼儿园) 일대
역사적 의의
1919년 북간도지역 3·13항일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된 모임 장소
설명
북간도지역 한인들은 3·13독립만세운동으로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민족의 독립의지를 표출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기반에는 학생과 교사, 즉 민족교육기관의 역할이 매우 컸다. 명동학교(明東學校) 유익현(劉益賢), 국자가 도립중학(道立中學) 최웅렬(崔雄烈)·김필수(金弼守), 광성학교(光成學校) 김호(金豪), 정동학교(正東學校) 송창문(宋昌文) 등 학생대표 5명은 독립에 관해 연설하기로 하였다. 명동·정동학교의 학생들은 김학수(金學洙)를 총대장으로 320여 명 규모의 ‘충렬대(忠烈隊)’를 조직했으며, 도립중학 학생들은 최경호(崔經浩)를 단장으로 한 ‘자위단(自衛團)’을 조직하여 대회 질서유지 임무를 맡았다. 70~80리 밖에 있는 소·중학생들은 하루 전 도보로 서전 벌을 향하여 출발하기도 하였다. 정동중학 교사와 학생들은 전날에 떠나 당일 아침 서전벌에 도착하였다.
1919년 3월 13일 서전 벌에는 수많은 한인들이 모였다. 계봉우는 『독립신문』에 당시 인원이 3만 명 이상이라 하였다. 용정 시내에 모인 한인들은 정오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조선독립축하회’를 시작하였다. 대회 장소에는 김영학(金永學) 대회장, 구춘선(具春先) 회장, 배형식(裵亨湜) 부회장과 정재면(鄭載冕), 강백규(姜伯奎), 마진(馬晋) 등이 참석하였다. 김영학의 독립선언 포고문 낭독에 이어 유예균(劉禮均), 배형식, 황지영(黃志英)의 연설이 있었고, 시위대는 ‘대한독립(大韓獨立), 정의인도(正義人道)’라고 쓴 대형 깃발을 앞세우고 태극기를 흔들며 시내로 돌진했다. 충렬대가 앞장서고 북과 나팔을 멘 악대가 간도일본영사관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시내 진입을 저지하려던 중국군이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이날 순국한 17명은 3월 17일에 룽징 남쪽 10리 되는 허청리(虛淸里)에 안장되었다.

기념비는 2009년 3·13기념사업회에서 세웠다. “三·一三 反日集會 遺址”라고 적혀 있으며 현재 용정 제1유치원 내에 있으며 용정시문물중점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유치원이 문을 닫아 접근이 어려워 이전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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