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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 명동교회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화룡현 명동촌
한글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智新镇 明东村 尹东柱故居 내
역사적 의의
독립운동의 근거지이며 민족운동의 산실이 되었던 교회
설명
명동교회(明東敎會)는 1909년 명동학교 교사로 초빙된 정재면(鄭載冕)의 요청에서 비롯되었다. 정재면은 평남 숙천(肅川) 출신으로 부친 정학전(鄭學篆)과 모친 김성약(金聖約)이 모두 기독교신자였다. 1903년 상경하여 상동청년학원(尙洞靑年學院)에서 주시경(周時經)·남궁억(南宮檍)·현순(玄楯) 등과 교제하며 신학문을 익혔다. 1907년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이동휘(李東輝)와 이동녕(李東寧)의 제안으로 룽징(龍井)으로 향했다. 서전서숙(瑞甸書塾)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재면이 룽징에 도착했을 때는 서전서숙이 매각된 상태였다. 이에 명동학교 교사로 초빙을 받아 교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일제의 정치억압과 경제착취로부터 해방되는 것도 구원의 방법이라 판단하여 교육과 선교를 통한 민족운동을 목회 과제로 삼았다. 명동학교 교사로 부임하면서 성경을 가르치고 매일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교회가 독립운동 기지로 활용될 수 있으며, 기독교학교가 중국 당국 및 일제 간섭으로부터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재면의 제안을 받아들여 김약연(金躍淵)은 1909년 6월경 명동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8칸 집을 구매하여 방을 터서 사용했다. 길선주(吉善宙) 목사와 김익두(金益斗) 부흥사를 초청하여 사경회(査經會)가 개최되었다. 예배 참석자는 평균적으로 60~70명이 넘었다고 한다.

명동교회는 해방 후 정미소로 사용되어 본래의 기능과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이후 한국의 해외한민족연구소에서 단층 70여 평 크기로 복원하여 명동역사전람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교회 건물이 붕괴 위험이 있어 내부 전시물은 옮겨진 상태이며, 관람도 중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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