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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징 김하규 묘

사적지 종류 장소, 묘역, 표지석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룽징시 지신진 중흥둔 뒷 산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龙井市 智新镇 仲兴屯
역사적 의의
명동학교 설립의 주역이었던 김하규의 묘소
설명
김하규(金河奎)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이다. 1899년 2월 18일 김약연(金躍淵)·문병규(文秉奎)·남종구(南宗九) 가문 사람들과 함께 두만강과 오랑캐령을 넘어 룽징(龍井)으로 집단이주하였다. 이때 이주한 인원은 모두 22가구 142명이었다. 1900년 두만강 대안 자동(滋洞)으로 이주했던 윤재옥(尹在玉)과 그의 가솔들이 합류하면서 현재의 명동촌이 형성되었다. 딸인 김신묵(金信默)이 문재린(文在麟)과 혼인하여 문익환(文益煥)·문동환(文東煥) 목사의 외할아버지가 되며, ‘간도 15만원 사건’의 주역인 최봉설(崔鳳卨)이 딸 김신희(金信姬)와 혼인하였기에 사위가 된다.
1901년 김하규는 대룡동(大龍洞)에 자신의 호를 붙인 소암재(素岩齋)를 설립하였다. 이곳은 한인 자제들에게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운영되었다. 인근의 장재촌(長財村)에는 김약연의 규암재(圭巖齋)가 꾸려졌고 중영촌(中營村)에는 남위언(南韋彥)의 오룡재(五龍齋)가 설립되었다. 1908년 소암재를 비롯한 규암재·오룡재는 명동서숙(明東書塾)으로 통합되어 서전서숙을 계승하였다.

김하규의 묘는 위치를 찾는데 어려움이 크다. 현재 묘를 정비하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묘 근처에 표지판 설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김하규의 활동은 잘 알려지 있지않다. 1942년 4월 21일 순국하여 토성포(土城浦)에 묘지가 마련되었는데 현재 묘를 찾는데 어려움이 크다. 묘지 상태가 좋지 않아 정비가 필요하며, 근처에 표지판 설립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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