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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거주지 (남기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장쑤성
문헌상 남기가 8호
한글 강소성 남경시 남기가 8호 일대
현지 江苏省 南京市 蓝旗街 8号 일대
역사적 의의
이동녕과 엄항섭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학생훈련소 대원 등이 거주했던 장소
설명
김구(金九)는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에 입교시키기 위한 예비교육을 위해 학생훈련소를 설치하였다. 훈련소는 난징(南京) 동관두(東關頭) 32호에 두었다. 1935년 6월 훈련소가 일제에 노출되고 말았다. 이에 6월 22일 훈련소 대원들은 장쑤성(江蘇省) 선흥현(宣興縣)의 징광사(澄光寺, 龍池寺)라는 사찰로 이동하여 훈련을 지속했으나, 9월 징광사와 임대기간이 만료되어 난징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인원은 27명이었다.
이들은 한국특무대독립군(韓國特務隊獨立軍) 본부와 김구 모친인 곽낙원(郭樂園) 여사가 거주하는 곳에 나누어 합숙하였다. 한국특무대독립군 본부는 목장영(木匠營) 고안리(高安里) 1호였으며, 곽낙원 여사의 거주지는 팔보후가(八寶後街) 23호였다. 이후 학생 중 대원 2명이 일본총영사관 경찰에 피체되자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다시 남기가(藍旗街) 8호로 학생들의 거주지를 옮겼다.
일경을 피해 거처를 옮기는 동안 김구는 중국국민당 정부를 상대로 대원들의 중앙육군군관학교 입교를 교섭하였다. 이 과정에 중국기술학교 입학 방안 등도 모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여의치 않았다. 자금 사정도 곤란해지면서 김구는 훈련 대원들에게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15~20원의 여비를 지급한 뒤 학생훈련소를 폐쇄하였다.
이밖에 1935년 11월 결성된 한국국민당도 이곳을 본부로 사용하였다. 더불어 엄항섭(嚴恒燮)은 한국특무대독립군과 학생훈련소 출신 청년들을 중심으로 한국국민당청년단(韓國國民黨靑年團)을 이곳에서 조직하였다.

남기가 8호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중국통신사 건물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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