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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 형무소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일본
대륙 아시아 지역 나가사키현
문헌상
한글 나가사키현 이사하야시 노나카초 648–5
현지 長崎県 諫早市 野中町648–5
역사적 의의
육삼정의거를 일으킨 이강훈, 백정기 등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었던 곳
설명
나가사키(長崎) 형무소(1907년 준공)는 최근까지 이사하야시(諫早市)에 위치하여 이사하야 형무소로 알려졌으나, 본래 이곳이 나가사키 형무소였다. 이곳에는 백정기(白貞基), 이강훈(李康勳), 김익상(金益相)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백정기와 이강훈은 1931년경 원심창(元心昌) 등의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흑색공포단(BTP)’을 조직하여 일제에 대한 파괴공작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1933년 3월에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가 일본 정치인과 참모부원, 친일 중국인 등 100여 명을 상하이(上海) 소재의 육삼정(六三亭)이라는 요정(料亭)에 초청해서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리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의거를 추진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일제 경찰에게 붙잡혔다.
백정기는 1933년 11월 15년 형을 선고받고 나가사키 형무소 제2사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형기를 마치지 못하고 1934년 6월 5일 순국하였다. 이강훈 역시 나가사키 지방법원에서 15년 형을 받았으나 감형이 되어 1942년 7월까지 이곳에 수감되었다. 이강훈은 2층 제4사 제7호 감방에 수감되었고 1940년 구마모토(熊本)감옥, 1942년 7월 도쿄의 도요타마(豊多摩)예방구금소로 이감되었다가 광복 후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金九)는 환국 후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백정기, 삼의사(三義士)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일본에서 활동한 박열(朴烈)에게 요청하여 유골발굴이 시작되었다. 백정기의 유골은 이강훈이 같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삼의사의 유골은 1946년 5월 15일 국내로 도착한 후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효창원에 안장되었다.
김익상은 1922년 2월 상하이로 가서 동지 오성륜(吳成崙)과 함께 2월 28일 일제 군부의 핵심인물인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를 처단하고자 하였다. 오성륜은 다나카 기이치가 상하이 세관부두에 도착하자 먼저 두 발의 총탄을 발사하였으나 빗나갔다. 뒤이어 김익상도 두 발의 총탄과 폭탄으로 그를 겨냥하였으나 총알은 스치고 폭탄은 불발되었다. 이 의거로 붙잡혀 나가사키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92년 형무소가 이전한 후부터 최근까지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가 재개발되어 대형마트가 들어서 있다. 현재 형무소 정문과 외곽의 일부가 보존되어 있고, 정문의 오른쪽에 형무소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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