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사적지명ㆍ주제어을 자유롭게 검색하신 후,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세요.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초성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ㆍ사적지명ㆍ주제어을 초성으로 검색하여,그와 관련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초성 < > 에 대한 사적지는 총 242 건입니다.

송몽규 거주지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일본
대륙 아시아 지역 교토부
문헌상
한글 교토시 사쿄구 히가시이라이초 5~8번지 일대
현지 京都市 左京区 東平井町 5∼8 番地 一帯
역사적 의의
윤동주와 함께 교토지역에서 민족운동을 펼친 송몽규가 거주했던 곳
설명
송몽규(1917. 9. 28~1945. 3. 7)는 만주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를 거쳐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1942년 교토 제국대학에 입학하였다. 은진중학교 재학 중 교사 명의조(明義朝)로부터 민족의식을 교육받고, 1935년 4월 난징(南京) 김구의 독립운동단체에 가서 1935년 11월까지 교육을 받았다.
송몽규는 문학자로서 민족 계몽운동에 정진하고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38년 한국어 수업이 폐지되자 연희전문학교 동급생 윤동주(尹東柱), 백인준(白仁俊), 강처중(姜處重) 등과 조선문학 동인잡지 출판을 위해 1939년 2~8월 사이 '민족적 작품합평회'를 개최하고 민족의식 앙양과 조선문화 유지에 노력하였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1942년 4월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하여 세계역사와 문화 연구 및 민족문화 유지에 노력하였다.
송몽규는 1942년 10월~1943년 7월 사이 윤동주, 고희구 등과 함께 민족의식 앙양 및 구체적 운동방침 등에 관한 협의를 거듭하였다. 이들은 조선 민족을 문화적으로 계몽ㆍ계발하여 민족의식을 자각하게 하고, 독립달성을 위해 민족문화를 수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였다.
이처럼 일본 유학 중 민족의식 계발을 위해 활동하던 중 '좌경도 조선학생 민족주의 집단 사건'의 주도자로 1943년 7월에 붙잡혀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 순국하였다.
송몽규가 거주했던 곳은 기록에는 동평정 5번지로 되어 있으나, 현지 주민들과의 인터뷰 결과 현재의 동평정 5~8번지 일대로 확인되었다. 현재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으나 1980년대까지도 이 지역에 한인 무덤이 몇 기 있었고, 일본강점기에는 한국어를 가르쳤던 장소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에는 이를 철거하고 현대식 빌딩이 들어서 있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