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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군관학교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광둥성
문헌상
한글 광동성 광주시 장주도 황포
현지 广东省 广州市 长洲岛 黃埔
역사적 의의
의열단 간부, 한인 청년들의 군사간부 훈련 학교
설명
1924년 6월 6일 제1차 국공합작의 산물인 황포군관학교가 설립되었다.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는 소련의 자금과 무기를 지원받아 설립한 소련식 사관학교이며 정식명칭은 중국국민당 육군 군관학교이지만 주강(珠江)의 황포 장주도에 위치해서 일반적으로 황포군관학교라고 불린다.
장제스(蔣介石)가 황포군교에서 피압박민족 후원으로 조선인 학생을 급비생(給費生)으로 대우하자 입학지망생이 증가했다. 조선인들은 피압박민족으로서 신식군관학교인 황포군교에서 중국의 새로운 정치와 군사를 배우고자 운집했다. 입학기간이 매 8개월에 1회였지만 학교 당국과 협의해서 조선인에 한해 임시로 입오생(예비생) 입학을 했다. 그 후 수용인원이 초과하자 별도로 학생군이라는 명칭으로 각지에 산재한 병영에 수용시켜 수비에 근무하게 하고 동시에 군사정치를 가르쳤다.
제4기에는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한 의열단 간부들이 대거 입학하였다. 황포군교 학생명단에서 확인된 인원만 73명이다. 무한분교(武漢分校)를 비롯한 여러 분교에 재학한 한인청년들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는 숫자이다. 이들은 황포군교 졸업 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통한 군사간부 양성에 힘썼으며,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하고 조선의용대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적 기초를 닦으며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육군군관학교기념관으로 사용하여 광저우(廣州)에서 손꼽는 관광지가 되었다. 광저우 황포군교는 1930년 난징(南京)으로 이전하고 건물은 1938년 일본군에 의해 폭격을 당하였다.
황포군교기념관은 1965년 복원, 1988년 국가급 문물보호기관으로 지정되어, 2004년 1,400여만 위안을 투자해서 현재의 기념관 모습을 갖추었다. 중국정부와 협의를 통해 한국독립운동사 관련 내용을 전시에 포함시킬 필요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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