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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피압박민족대회 개최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벨기에
대륙 유럽 지역 벨기에
문헌상 백이의 브뤼셀 에그몽 궁전(벨기에 브뤼셀 에그몽 궁전)
한글 브뤼셀 드 클라이네 자벨 8(에그몽 궁전)
현지 De Kleine Zavel 8(Place du Petit Sablon 8), 1000 Bruxelles
역사적 의의
1927년 세계피압박민족대회 때 한국 유학생들이 외교활동을 전개했던 곳
설명
세계 피압박민족대회는 약소민족과 무산계급의 협력 도모, 전 세계 피압박 계급과 민족들의 생존권 보장, 민족의 자유와 인류 평등을 실현한다는 목적으로 개최되었다. 개최 시기와 장소는 1927년 2월 10일~15일, 브뤼셀 에그몽 궁전(Egmont Palace)이다.
원래는 1926년 8월 베를린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식민지 민족대표의 여행권 불허 사정과 각 민족대표의 불참으로 인해 연기되었다. 그러다가 1927년 2월 5일부터 14일까지 10일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처음으로 피압박민족대회가 개최되었다. 독일의 유덕고려학우회에서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피압박민족대회가 개최되자 이극로ㆍ황우일(黃祐日)ㆍ이의경(李儀景)(이미륵)을 대표로 선정하였다. 그 외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김법린이 프랑스 유학생을 대표해 합류하였고, 마침 유럽을 여행 중인 허헌(許憲)이 신문기자 대표로 합류하여 표면상 5명의 한국대표단을 구성하였다. 이극로는 한국대표단의 단장으로 선정되어 대회의 준비와 활동을 주관하였다.
김법린은 본회 첫날인 2월 10일에 일제 규탄 연설을 하였고, 한국 대표단은 ?한국대표단 결의안(RESOLUTION der KOREANISCHEN DELEGATION)?을 제출하였다. 당시 각국 대표에게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문제(The Korean Problem)』는 이의경의 소장본이 독립기념관에 기증되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가로 15cm, 세로 23cm 갱지에 인쇄된 원본이며, 표지에는 영어ㆍ불어ㆍ독어로 『한국문제』라는 제목 아래 원색의 태극기와 동아시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본문은 ‘KOREA’라는 제목 아래 독일어와 영어로 각각 4쪽씩 1~8쪽의 표시가 되어 있고, 앞뒤 표지를 포함하여 11쪽으로 베를린의 살라드룩 운트 스타인코프(Saladruck & Steinkopf) 인쇄소에서 발간하였다.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정석해의 자서전에 의하면 “벨기에 브뤼셀에서 약소민족회의가 모스크바 공산당의 지령으로 열렸어요. 사실 이 회의가 있는 것은 백림(白林)에서 이극로가 내게(정석해-필자) 편지를 해서 그가 가는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우리도 빠리에서 대표를 보내자고 했죠. 그리고 우리의 빠리 거류민단의 대표로 김법린을 보냈어요. 인도에서 네루가 대표로 온 이때 우리는 그래도 대표를 보낸다고 그 자격증을 발행하고는 서명을 내가 해서 보냈더니, 대회 측에서 보니까 이극로 박사는 개인으로 왔고 이쪽에서 보낸 김법린은 무슨 자격을 가지고 온 것 같거든요. 그래 김법린이 오히려 한인 대표격이 되었죠”라고 하였다.
세계피압박민족대회에 한국대표단은 한국문제를 본회의 의안에 상정해 주도록 의장단에게 요구하였는데, 가부 표결의 결과 한국문제 안건은 강대국 대표의 반대로 부결되어 한국의 존재는 무시되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대표들이 이 대회에 참석하여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환기했다는 점에 매우 의의가 있다. 또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도 대회의 내용이 상세히 보도되었는데,《동아일보》는 1926년 12월 17일 자 사설을 통해 피압박민족대회가 인류사회의 평화에 이바지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식민지 강대국의 인간성 말살 즉, 착취ㆍ압박ㆍ약탈에 경고를 하였다고 평가하며, 이 대회를 계기로 세계 각지에서 피압박민족운동이 치열하게 대두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조선일보》도 1927년 2월 12일 자 논설에 “이 대회의 성공을 바라고 우리 대표들이 분투를 기원한다”라고 썼다가 압수되었다.
에그몽궁은 에그몽가(Egmont Family)(1532~1729) 의 첫 번째 궁전이었고, 1918년 10월 브뤼셀시의 재산이 된 이후 1964년 5월 벨기에 정부에 팔리게 되었다. 이 궁전은 1970년대에 연방 외무성과 외교통상개발국으로 사용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외국 국빈과 벨기에 정치가들의 고급 사교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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