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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노동동맹회 제2회 총회 개최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일본
대륙 아시아 지역 오사카부
문헌상
한글 오사카부 오사카시 기타구 텐진바시6쵸메4-20
현지 大阪府 大阪市 北区 天神橋6丁目4–20
역사적 의의
1924년 4월 오사카노동동맹회 제2최 총회가 열린 곳
설명
오사카노동동맹회(오사카동맹회)는 1922년 12월 조직된 일본 최초의 한인 노동조합이었다. 조선인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오사카지역의 조선 및 일본인사회운동단체뿐 아니라 타지역과도 연대하여 민족운동에 나섰다.
단체의 명칭은 노동동맹회였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향상시키는 일에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한인 노동자들은 노동환경의 개선과 임금인상 보다는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지의 확보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본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수용되기가 어려웠다. 노동자들은 이를 한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각이 그 원인이라고 인식하면서 국내의 상황을 주목하고 이를 지원하는 등 민족운동과 일본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인 노동자들은 1923년부터 시작되어 간토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사건규탄운동, 국내에서 언론탑압의 일환으로 조직된 각파유지연맹(各派有志聯盟)에 대한 반대운동, 일본에서 메이데이 행사·3악법 반대운동·가메이도(龜戶)경찰서사건 규탄 등의 민족운동을 꾸준히 이어나갔다.
1924년 4월 개최된 제2최 총회에서는 민족운동에 더욱 강한 비중을 두게 되었다. 오사카 기타구(北歐) 시민관에서 열린 회의는 의장 김인수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 회의는 일제의 감시가 심하여 참가를 유도하기 위한 선전지 3,000장이 사전에 압수당하기도 하였고, 출석자가 80여 명의 절반인 40여 명의 일제경찰이 투입되었다.
회의 도중에 해산조치 되었는데, 이에 항의하는 한국인 9명이 검속되었고 참석자들이 구타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는 성과가 있었다.
사상연구부의 설치·반대단체 직접행동·조선전국노동연맹 가입·노농노국(勞農露國)(소련)의 승인 등이 언급되어 협의되었고 가결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노동문제나 일본사회운동보다 국내문제와 민족운동에 관심이 높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며 단체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지속적인 투쟁으로 민족운동을 이끌어나가려는 의지는 1925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의 결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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