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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춘 북일학교 터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길림성 혼춘시 영안진 대황구림장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 영안진 대황구촌 서쪽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珲春市 英安镇 大荒沟村 서쪽
역사적 의의
1917년 이동휘가 일본의 탄압을 피해 김남극과 함께 세운 민족학교의 옛 터
설명
북일학교(北一學校)는 나자구(羅子溝)의 나자구사관학교와 대황구(大荒溝)의 동창학교(東昌學校)를 통합 발전시킨 학교였다. 1917년 1월 이동휘李東輝는 나자구에서 일제의 탄압과 추적을 피해 훈춘현(琿春縣) 대황구(大荒溝)로 이동하였다. 훈춘 외곽지역에 위치한 대황구는 북간도와 연해주를 연결하는 거점지역으로 한인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중국당국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았다. 이에 이동휘 계열의 인물들은 현지에서 동창학교를 운영하던 양하구(梁河龜)·김도연(金道硯)·김남극(金南極)·양병환(梁炳煥)·양병칠(梁炳七)·김하정(金夏鼎) 등과 협력하여 북일학교를 건립할 수 있었다. 북일중학교 교사(校舍)는 주민들의 협력하여 8칸 가옥에 교실 3개의 규모로 건축되었다. 길이가 약 22m, 넓이 8m의 남향집이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입학순서와 연령을 고려하여 3개 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였다. 학제는 일정한 연한이 없었지만 6개월 내지 1년만에 수업을 마쳤다. 교과내용은 민족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사관양성을 위한 체육과 군사훈련에 집중되었으며, 국어·역사·지리를 비롯하여 중국어·영어·러시아어·수학·물리·화학 등의 과목이 있었다.
학교는 이동휘가 명예교장, 양하구가 교장, 김남극이 부교장을 맡았다. 초기 간민회·나자구무관학교 등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30대 인사들이 교원을 맡았다. 군사 교육과 훈련은 고경재(高京在)·김립 등이 담당하였고, 역사는 남공선(南公善)과 김하정이, 영어는 서울 출신의 이영 등이 맡았다. 그러나 교사들이 이동휘를 따라 연해주로 떠난 후에는 이 지역 출신들이 교원이 되었다. 창설 초기 20여 명으로 출발하였지만 이후 40여 명으로 늘어났다. 입·퇴교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2년 정도 운영하면서 2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1920년 경신참변으로 북일학교를 비롯하여 마을이 초토화되었다. 기초석 및 건물 터를 찾아보았으나 밭으로 변한지 오래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다. 2005년 북일학교인근에 대황구 13열사 기념비를 세워 기념하고 있으나 북일학교 및 부교장이었던 김남극과 관련한 사적은 아무런 표시도 되어 있지 않다. 표지판 설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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