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사적지명ㆍ주제어을 자유롭게 검색하신 후,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세요.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초성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ㆍ사적지명ㆍ주제어을 초성으로 검색하여,그와 관련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초성 < > 에 대한 사적지는 총 95 건입니다.

왕칭 북로군정서 총재부 터 (덕원리)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지린성
문헌상 왕청현 춘명향 덕원리
한글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칭현 왕칭진 유수하자촌 진입로 일대
현지 吉林省 延边朝鲜族自治州 汪清县 汪清镇 柳树河子村 진입로 일대
역사적 의의
만주지역 대표적인 무장독립운동단체 북로군정서 본부가 있었던 곳
설명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는 1911년 3월 북간도의 대종교 인사들이 왕칭현(汪淸縣)에서 조직한 중광단(重光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3·1운동 이후 중광단은 공교도와 연합하여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을 결성하였다. 1919년 10월 대한정의단은 김성극 등 공교도들이 이념 차이로 분립하여 나가자 조직을 재정비하고 군정부(軍政府)로 개칭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승인을 신청하였다. 임시정부는 1919년 12월 1일에 개최된 정례국무회의에서 군정부를 군정서(軍政署)로 개칭하기로 하였다. 이때 임시정부가 보낸 「임시정부 국무원 제205호」의 명령을 따라 군정부는 군정서(軍政署)로 이름을 바꾸었다. 정식 명칭은 대한군정서였으나 북로군정서로 더 알려졌다.
북로군정서는 총재부와 사령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주로 관내의 사무를 담당한 총재부는 총재 서일(徐一), 부총재 현천묵(玄天默), 인사국장 정신(鄭信) 등이 있었다. 군사 활동을 담당한 사령부는 총사령관 김좌진(金佐鎭)을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총재부는 왕청현 덕원리(德源里)에 두었다가 춘명향(春明鄕) 대감자(大坎子)로 옮겼다.

북로군정서 총재부가 있던 덕원리(德源里)는 왕청현으로 들어가기 전 유수하자 마을 부근에 있다. 마을로 들어가기 전 산 밑에 위치했으나 일본군이 여러 차례 마을을 수색하고 탄압하여 덕원리는 없어지고 흔적도 사라져 버렸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