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통합 검색

전체메뉴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세계 곳곳의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보세요!!

> 인물과 사건으로 보는 사적지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사적지명ㆍ주제어을 자유롭게 검색하신 후, 관련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세요.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통합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 사적지명ㆍ주제어 초성검색

인물ㆍ단체ㆍ사건ㆍ사적지명ㆍ주제어을 초성으로 검색하여,그와 관련된 국외독립운동 사적지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선택하신 초성 < > 에 대한 사적지는 총 278 건입니다.

우한 국민정부 청사 터

사적지 종류 건물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베이성
문헌상
한글 후베이성 우한시 강안구 중산대로 708호
현지 湖北省 武漢市 江岸區 中山大路 708號
역사적 의의
무한 국민정부 청사 구지가 있던 자리
설명
1924년 1월 국공합작이 성립되자 장개석은 손문의 뜻을 이어 북벌을 개시하였다. 그 결과 국민혁명군은 1926년 장사(長沙)·무창(武昌)·남창(南昌)을 차례로 점령하였다. 1927년 3월에는 상해(上海)와 남경(南京)까지 점령하여 장강(長江) 이남이 세력권에 포함되었다.
북벌에는 한인들도 참전하여 구실을 하였다. 1926년 무창을 공격하였던 국민혁명군 6군의 한인 간부들로서 포병영 영장 이검운(李檢云), 부영장 권준(權畯), 부관 안동만(安東滿)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황포군관학교 졸업생으로서 북벌이 시작되면서 장교로 참전하였다.
이 가운데 권준은 의열단 단원으로서 국공합작의 초기부터 중국혁명에 참가한 인물이었다. 권준(1895.5.2-1959.10.27, 호 백인(百忍))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국내에서는 1917년 광복회에 참가하여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고, 1921년 의열단에서 군자금 조달과 폭탄제조 등의 임무를 맡아 국내 폭탄투척 의거를 지원하였다.
권준은 1924년 중국 국공합작을 위한 중국국민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가 소집되자, 조선혁명가의 신분으로 대회를 방청하였다. 이를 계기로 황포군관학교 4기 보병과에 입학하여 북벌이 개시되자, 6군 포병영 부영장으로 전투에 참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1926년 그는 무한에서 동방피압박민족연합회(東方被壓迫民族聯合會)에 조선대표로 참석하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고 황포군관학교 무한분교의 훈련부 교관을 맡아 활동을 이어나갔다.
무한 국민정부 청사 구지는 중산대로 708호에 있다. 권준 등이 중국 국민 정부와 연계하면서 활동하였던 곳으로, 현재 대화반점(大華飯店)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3층에 전시관이 있다. 1996년 전국 중점문물단위로 지정되었다.

지도보기   인쇄   목록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