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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 거주지 (삼태장)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충칭
문헌상 기강현 신가자 삼태장 30호
한글 중경시 기강구 신가자 삼태장 30호
현지 重庆市 綦江区 新街子 三台庄 30号
역사적 의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한 홍진ㆍ조소앙ㆍ양우조 가족 등이 기강에서 약 1년 간 거주했던 곳
설명
신가자 삼태장 30호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기강에 머물던 시기에 조소앙과 홍진, 양우조ㆍ최선화 부부 등이 거주했던 곳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 직후 상해를 떠나 1940년 10월 중경에 정착할 때까지 8년간 중국 관내지역을 떠돌아다녔다. 기강에는 1939년 5월에 도착하여 약 1년간 머물렀다. 이후 중경으로 옮기게 되었다. 1939년 기강현에서 조사ㆍ보고한 「기강현제일구성진외교조사표」를 분석하면 기강에 도착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은 모두 107명이며, 모두 4곳에 분산되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이 거주하던 곳은 임강가(臨江街) 43호, 상승가(上升街) 30호, 관음암(觀音庵), 신가자 삼태장 30호였다. 이곳 삼태장에는 조소앙 선생의 가족 등 모두 17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양우조ㆍ최선화 부부의 『제시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마침내 오늘(1939년 5월 3일)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양자강 건너편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 집도 미리 얻어놓은 집이었는데 퍽 조용하고 청소를 잘하면 깨끗이 지낼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인가가 드문 간편하게 된 시골집이었다. 조소앙 선생 댁과 홍만호 선생님이 앞뒷방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홍만호 선생님은 넓은 앞방이고 우리 세 식구는 좀 아늑한 뒷방을 차지하게 되었다.(임시정부 가족 백여 명이 ‘태자상’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조소앙ㆍ양우조ㆍ홍만호 세 가구는 양자간 건너 기강 맞은편의 중국집을 얻어서 살았다)이로써 ‘신가자(新街子)’라는 마을의 한 사람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83~84쪽)
삼태장은 명문 독립운동가 집안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곳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장을 역임하고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의 기본이념인 삼균주의를 창안한 조소앙의 부모가 20여 일 사이에 이곳에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조소앙의 어머니 박필양(朴必陽)이 병환으로 숨을 거둔 후 20여 일만에 부친 조정규(趙禎奎) 역시 삶을 마감하였다. 부인의 장례를 치른 후 행방이 묘연하였던 조소앙의 부친은 기강의 강변 늪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후 슬픔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기강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애틋한 사랑과 삶의 현장이 바로 이곳 신가자 삼태장 30호인 것이다.
신가자 삼태장 30호는 원형이 완전히 훼손되었으며 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북문 쪽 일부에 흙벽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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