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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전시관 (조선혁명당 본부)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난성
문헌상 장사시 남목청 9호
한글 호남성 장사시 개복구 연승가 남목청향 6호
현지 湖南省 长沙市 开福区 楠木厅6号 大韩民国临时政府(长沙)活动旧址
역사적 의의
지청천이 당수로 있던 조선혁명당 본부 건물
설명
1937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근거지를 전장(鎭江)과 난징(南京)에서 창사(長沙)지역으로 옮겼다. 1937년 7월 7일 발발한 중일전쟁때문이었다. 임시정부는 1937년 11월 28일 국무회의를 통해 “政府臨時辦公處를 中國 江蘇省 鎭江으로 붙어 同 湖南省 長沙에 移轉”하기로 결의하였다.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11월 말부터 난징을 빠져 나와 창사로 이동하였다. 1937년 12월경에 창사에 도착한 임시정부와 요인들은 1938년 7월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임시정부는 창사지역에서 선전활동과 독립운동 정당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했다. 정당 통합운동은 중일전쟁 직후 추진되었다. 김구(金九)와 이동녕(李東寧)이 이끄는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과 조소앙(趙素昻)·홍진(洪震) 등이 간부로 있는 재건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그리고 지청천(池靑天)·최동오(崔東旿)의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의 민족주의 정당의 통합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3당의 통합 노력이 진전됨에 따라 1938년 5월 창사 남목청(楠木廳)에서 김구와 지청천·현익철(玄益哲)·유동열(柳東說) 등이 회합하여 통일 문제를 논의하였다.
남목청은 조선혁명당이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당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을 탈당한 지청천 계열의 조선혁명당과 조소앙 계열의 재건 한국독립당은 독자노선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혁명당과 재건 한국독립당은 재정여건이 열악한 상태였다. 이에 김구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국민당의 지원이 필요하였고, 김구 역시 이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독립운동 세력을 응집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남목청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었다. 남목청에서 통합을 논의하던 중 이른바 ‘남목청 사건’이 발생하였다. 회의장에 조선혁명당 간부 출신 이운한(李雲漢)이 난입하여 김구를 비롯한 현익철·유동열·지청천 등에게 총을 발사한 것이다. 총격으로 김구와 유동열·지청천은 총상을 입었고, 현익철은 사망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인 내부의 갈등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일제의 공작이 있었다. 일본총영사관 경찰부에서 박창세(朴昌世)를 회유·매수하여 이운한을 통해 김구암살 공작을 추진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창사활동구지’ 기념관 건물은 2007년 창사시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고, 2009년 복원·개관하였다. 입장료는 20위안(元)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 매일 개방하고 있으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주변 개발로 인해 2017년 1월 25일부터 휴관했다. 2019년 8월 부분적인 개관을 했고, 12월 주위공사가 완료되면 완전 개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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