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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혁명당 구지(장사 임시정부활동 구지)

사적지 종류 기념관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후난성
문헌상 장사시 남목청 9호
한글 호남성 장사시 개복구 연승가 남목청향 6호
현지 湖南省 长沙市 开福区 連升街 楠木厅乡 6号
역사적 의의
지청천이 당수로 있었던 조선혁명당 구지에 만들어진 전시관
설명
▣ 공 지 사 항 ▣

창사 남목청6호 대한민국임시정부활동구지 진열관 휴관 안내

중국 후난성 창사시 남목청임시정부활동구지 주변 문화의 거리 조성공사에 따라 2017.1.25.(수)부로 문화의 거리 조성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휴관에 들어갔습니다. 방문을 계획하실 때 이점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일정은 중국 현지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기간 : 2017. 1. 25 ~ 완료시까지


1938년 초 지청천(池靑天)을 중심으로 한 조선혁명당이 본부로 사용했던 곳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그 가족들이 거주했던 장소이다. 또한, 1938년 5월 7일 김구(金九) 선생이 3당 통합회의 도중 피격당한 ‘남목청(楠木廳) 사건’으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한국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이를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의 기회로 보았다. 우익진영에서는 독립을 위한 통합과 단결을 위한 협동전선운동을 통해서 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김구가 이끄는 한국국민당과 조소앙(趙素昻)의 재건 한국독립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의 합당이 그것이다.
3당의 합당은 김구의 한국 국민당이 중심이 되었다. 당시 조선 민족 혁명당을 탈당한 지청천 계열은 조선혁명당을 창당하여 독자노선을 모색하고 있었고, 조소앙 등의 재건 한독당도 활발한 활동은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조선혁명당과 재건 한독당은 재정여건이 열악하여 김구의 지원이 필요하였고, 김구 역시 이들과의 연합을 통해서 독립운동 세력을 응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1937년 7월 초 남경에서는 이들 각 당의 대표로서 송병조(宋秉祚)·홍진(洪震)·지청천이 모여 회담을 개최하였다. 이들은 공동선언서를 발표하여 임시정부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데 합의하였다. 이들은 미주지역의 단체들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이로써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연합으로 각 단체의 재편이 논의되는 과정에 불만도 있었다. 논의 가운데 조선혁명당의 강창제(姜昌濟), 박창세(朴昌世) 등은 소외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에 이들은 이운한(李雲漢)을 이용하여 김구, 현익철(玄益哲), 유동열(柳東說), 지청천 등에게 총격을 가하는 이른바 ‘남목청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남목청 9호는 조선혁명당의 본부이면서 3당을 합당을 논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이 회의장에 조선혁명당 간부 출신인 이운한이 난입하여 총을 발사한 것이다. 첫발에 김구를 시작으로 현익철, 유동열, 지청천이 각각 피격되었다. 현익철은 이 피격으로 사망하였다. 중국 경찰은 범인이 이운한임을 확인하고 체포하였고, 배후 인물이 박창세와 강창제라고 밝혔다.
2009년 조선혁명당 본부 건물을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현재 전시관으로 사용되어 연 7만~8만 정도의 한국인 관람객이 꾸준히 찾고 있다. 그러나 전시가 오래되었고 중국 측에서 단독으로 전시가 이루어져 수정이 필요하다. 이에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한중 양국이 공동으로 재전시를 위해 논의한 후 전시를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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