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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구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산시성
문헌상 섬서성 서안시 북대가 이부가 4호
한글 섬서성 서안시 북대가 2부가 4호
현지 陕西省 西安市 北大街 二府街 4号
역사적 의의
1941년 초부터 1942년 9월까지 한국광복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
설명
1940년 9월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대일전쟁을 전개하기 위해 11월 서안에 전방사령부를 설치하였다. 적은 인원으로 하향식 부대편제를 구성한 한국광복군으로서는 병력 확보가 시급한 문제였다. 한국광복군은 적극적인 모병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총사령부를 서안으로 이전하였다. 서안은 화북이나 동북방면으로 나가는 전략적 요충지대로 적 후방에 대한 공작 및 작전지점으로 적합했다. 당시 서안에는 호종남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제2전구 전신인 제34집단군 군사위원회의 행영이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중일전쟁 이후 한반도에서 많은 한인이 화북지방에 이주하여 거주하고 있었는데, 광복군으로서는 서안이 이들 한인에 대한 초모, 선전활동을 전개하기가 적합한 곳이었다.
임시정부는 이미 1년 전 이곳에 군사특파단을 파견하여 초모, 선전활동을 전개하면서 서안에 군사기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에서 서안으로의 총사령부 이전을 결정한 것이었고, 부관처장 황학수를 총사령 대리로 한 서안총사령부 잠정부서가 편성되었다. 이 잠정부서는 중경의 총사령부 인원과 서안의 군사특파단 인원을 합쳐서 편성된 것이었다. 서안총사령부는 전방사령부와 전선사령부의 성격이 강했다. 서안의 전방사령부는 처음에 통제방에 사령부를 설치하였다가, 늦어도 1941년 초에는 이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이부가 4호로 옮겼다.
서안에 총사령부가 설치되면서 한국광복군의 본격적인 군사활동이 추진되었다. 서안총사령부가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지대의 편성이었다. 총사령부는 사병의 모집 및 훈련, 선전과 정보수집, 적정 정찰, 필요에 의한 유격전의 수행이라는 당면 임무를 수립하고 추진하였다. 한편으로 기관지 《광복》을 발행하기도 했다. 이곳에는 광복군 제2지대 본부도 함께 있었으며, 서안총사령부는 제2지대가 두곡진으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1942년 9월 중경으로 이전하였다.
1942년 9월 중경으로 이전할 때까지 광복군총사령부는 이곳을 거점으로 일본군 점령 지역 내 한인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공작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초모공작을 통하여 한국광복군은 창설 1년여 만에 3백여 명에 달하는 병력을 확보하였다.
본래 목조 2층 건물이었으나, 1995년경 북대가 도로확장 당시 도로에 편입되어 현재는 건물이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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