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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사 구지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싱가포르
대륙 아시아 지역 싱가포르
문헌상
한글 싱가포르 달사정산 29호
현지 29, Duxton Hill(達士頓山 29號)
역사적 의의
홍명희ㆍ정원택 등 독립운동가들이 동남아지역 독립운동기지 건설 등을 협의했던 곳
설명
한일병탄에 분개한 금산 군수 홍범식(洪範植)은 순국으로서 항거한 대표적인 관료였다. 조야 인사들은 충격과 동시에 스스로 자결ㆍ순국을 감행하는 등 의열투쟁으로 이어지며 항일의식과 배일적개심은 고조되는 분위기였다. 일본으로부터 귀국한 홍범식의 아들 홍명희(洪命熹)는 망국의 현실을 통감하는 한편 식민지 민족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방하였다. 만주로 망명한 홍명희는 상해ㆍ베이징 등 중국 관내를 돌며 새로운 독립운동방략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상해는 중국 혁명가는 물론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근거지나 다름없었다. 각국 조계지는 망국인 활동가에게 대외적인 외교활동을 추동시키는 ‘매력적인’ 장소이었다.
홍명희는 박은식(朴殷植)ㆍ신규식(申圭植)ㆍ신채호(申采浩)ㆍ문일평(文一平) 등과 동제사(同濟社)를 결성하는 등 한인사회 구심점을 마련하였다. 이들 중 신규식은 중장기적인 독립운동 수행을 위해 군자금 모금을 위한 새로운 개척지로서 동남아시아에 주목했다. 신해혁명을 주도한 중국인 동지들의 활동은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하여 신규식은 동료들과 여러 차례 회합을 거쳐 동남아시아로 진출을 모색하였다.
1915년 3월 4일(음력) 홍명희는 김진용(金晉鏞)ㆍ김덕진(金德鎭)ㆍ정원택(鄭元澤) 등과 함께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쑨원을 비롯한 중국 혁명당의 활동에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혁명에 필요한 경비 조달과 신문ㆍ잡지 등 출판물 발간을 통한 선전활동에 앞장섰다. 이곳 활동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신규식과 홍명희 등은 현지 화교들의 도움을 받아 한국독립운동을 진전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싱가포르 도착부터 킴퐁로(金榜路)에 새로운 거처를 정해 이사한 6월 중순까지 약 2개월간 홍명희 등 일행은 이 건물 3층에 머물렀다. 이들은 국민일보사 관계자는 물론 실업가 등 유력인사들과 빈번한 교류를 병행하였다. ‘화교학교’인 계문학교(啓文學校) 방문은 국외 한인사회 민족교육기관 설립을 위한 기초적인 자료로 얻기 위한 일환으로 생각된다. 즉 이는 동남아에 거주하는 화교사회와 국제적인 연대를 통한 제국주의 세력에 대항하려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이들에게 싱가포르는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연대를 위한 ‘전략적 거점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곳이 중국혁명에 적극적인 화교들이 발행하던 혁명파의 신문인 《국민일보》의 발행소였다는 사실은 이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20년대 동방무정부주의연맹 결성 등은 이러한 역사적인 연원과 무관하지 않다.
국민일보사 있었던 주변은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중심가가 되었으며, 당시 건물은 더런탕(德仁堂)이라는 한약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홍명희 등이 거주했던 건물은 당시에는 3층 건물이었지만, 1983년 상가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2층으로 변했다. 이때 원래 건물도 개ㆍ보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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