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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회ㆍ권업신문사

사적지 종류 장소 국가 러시아
대륙 유럽 지역 연해주
문헌상 1912.5.26(4호)~1912.11.17(30호) 해삼위 신한촌 하바로브스크 울리짜 10호(전화 297) 외 4곳
한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하바로브스카야 중심부 입구
현지 Россия,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Владивосток, улица Хабаровская, 9,
역사적 의의
1911년 12월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권업회와 그 기관지인 권업신문이 발행된 곳
설명
1911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한인들은 신한촌(新韓村)을 건설하고 자치단체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12월 신한촌 내에 조직된 권업회(勸業會)는 그 노력의 결과였다. 권업회는 연해주 한인사회의 이익 증진 및 강화를 위해, 그리고 독립운동 기구로 조직되었다. 권업회 창립을 위한 움직임은 1911년 6월 발기회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발기회는 이종호(李鍾浩)·김익용(金翼瑢)·강택희(姜宅熙) 등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회장은 최재형(崔在亨), 부회장은 홍범도(洪範圖)를 선출하였으며 임시사무소는 조창호(趙昌浩)의 집으로 정하였다. 발기회에서는 연추·수청 등의 각 지방에 지회 설립과 회원모집을 권유하기 위한 인원을 파견하였다. 같은 해 7월 16일 발기회는 한형권·김와실리 등 청년들이 중심이 된 청년근업회(靑年勤業會)와 연합하여 임원을 재선하였다. 이와 함께 러시아 내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당국과 교섭을 추진하여 같은 해 11월 23일 인가를 받았다. 1911년 12월 19일 신한촌에서 권업회 창립총회가 열렸으며 의장 이상설, 부의장 이종호 등이 선임되었다. 권업회는 조직 후 각 지역에 지회를 확대하였다. 1914년 7월 하바로프스크·추풍·수청 등 러시아 뿐만 아니라 북만주 목릉하(穆陵河) 유역까지 영향력을 넓혀 나갔다. 단체의 규모는 1914년 7월경 8,500여 명에 달하였다. 이와 함께 『권업신문』을 간행하여 언론활동에 나섰다. 『권업신문』은 지회와 분사무소가 있는 각지의 한인촌락에 보급되었다. 뿐만아니라 국내는 물론 남북만주와 미주 등지의 한인사회까지도 보급에 나섰다. 이를 위해 신문사 사원을 해당지역에 파견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권업회는 대한광복군정부와 함께 러시아 당국의 강력한 탄압을 받았다. 러시아 당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일본과 제휴관계를 맺었다. 이에 자국 내에서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금지시켜 권업회는 1914년 8월 해체되었으며 이어 기관지인 『권업신문』도 폐간되었다.

권업회의 자리는 현재 신한촌 기념비 부근의 엘레나 상점 부근으로 추정된다. 재개발로 과거의 모습은 사라졌기에 명확한 위치를 비정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탐문조사를 통해 현재 자리가 유력하다고 판단된다. 러시아 측 자료를 확보하여 권업회를비롯한 신한촌 내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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