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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중학교

사적지 종류 기념비 국가 중국
대륙 아시아 지역 베이징
문헌상
한글 북경시 통주구 신성 남관 31호
현지 北京市 通州区 新城 南关 31号
역사적 의의
주문빈을 비롯한 40여 명의 조선학생들이 다녔던 중학교
설명
주문빈(본명 김성호)은 '안악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 아버지 김기창을 따라 1914년에 북경 통현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1916년 통현 노하소학교를 거쳐, 1921년 노하중학에 입학하면서 사회주의과학 학습소조 결성에 참가하였다.
그가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는 데는 큰형 김성호의 영향이 컸다. 이후 그는 중국공청단,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1927년 4월 중공 통현지부를 결성하고 서기가 되었고, 통현지구 항일구국회 조직에도 참여했다. 같은 해 북경지구 지하당에 소속되어 연경대학, 보인대학 학생들 속에서 조직활동을 전개했다. 1932년 보인대학 내에 과학생활사를 결성하여 군수약품을 제조했다. 1933년 무순탄광에 파견되어 노동자 조직활동에 종사했고, 1936년에는 중공 당산시 공작위원회 서기로서 광산노동자 조직활동에 종사했다.
1938년 3월 개란탄광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을 지도했다. 6월 조격장탄광에서 노동자항일무장대를 조직하여 무장폭동을 일으켰으며, 폭등 참가자를 규합하여 기동 동북항일연군 제4종대 산하 특무대대를 편성했다. 8월 기찰열요군구 직속 팔로군 기동유격대 정치부 주임, 1939년 중공 기동 동부지구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41년 일본군의 항일근거지 대토벌에 맞서 항전했으며, 1943년 중공 기동특별위원회 조직부장이 되어 도시사업 훈련반과 탄광사업반의 활동을 지도했다. 같은 해 중공 기열변특위 조직부장이 되었다. 1944년 10월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전사했다.
노하중학교 건물은 현재에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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